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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15> 이탈리아 청년 마르코 이엔나의 태권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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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도장 들어간 소년, 스승의 나라 찾아

날아차기 시범을 보이고 있는 이탈리아 태권 청년 마르코 이엔나. 그는 태권도를 뿌리부터 배우고 싶어 외국인 최초로 경희대 태권도학과에 입학했다.

한국은 내게 스승의 나라이며 아버지의 나라다.

 어려서부터 태권도를 배운 나는 언젠가는 꼭 태권도 종주국, 스승의 나라인 한국을 가고 말겠다는 꿈을 품고 있었다. 아마도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이라면 마치 무슬림(이슬람교도)의 평생 소원이 메카를 가보는 것처럼, 전 세계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태권도 종주국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일 것이다.

 일곱 살 적.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찾아간 로마의 작은 태권도 도장에서 처음 흰 도복에 흰 띠를 맸을 때 나는 태권도가 한국의 무도인 것도 몰랐다. 그냥 또래 아이와 대련하는 게 재미있고, 생소한 동작의 품세를 알아가는 게 신기하고 흥이 났다. 그러나 태권도 동작 하나하나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알게 되면서 태권도 종주국 한국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겼다. 한국 대사관의 홍보자료도 찾아보고 한국인과 친분도 맺으며 여러 방법을 동원해 한국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아시아 동쪽 끝에 있는 작은 나라였다. 내 나라 이탈리아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했다. 그 작은 나라가 세계적인 무도 태권도를 전 세계에 전파해 현재 190여 개 회원국과 7000여만 명의 태권도 가족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모님을 설득했고, 혼자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태권도학과 입학 … 학문·정신 아우른 지도자 꿈

2005년 5월 6일 안개 자욱한 인천공항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나를 맞이한 한국의 냄새는 생소함보다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친숙함에 가까웠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겠다는 계획보다는 무작정 태권도를 뿌리에서부터 배우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나는 경희대 태권도학과를 찾아갔다.

 그러나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했던 나에게 언어는 너무나 큰 장벽이었다. 그때부터 8개월간 나는 한국어 강좌를 수강하며 한국어를 공부했고, 마침내 꿈에도 그리던 경희대 태권도학과에 외국인 최초로 정식 입학했다. 4년이란 캠퍼스 생활 동안 나는 태권도 실기 기술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았다. 태권도라는 학문을 배웠고, 한국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

 태권도는 한국의 전통무술로 한국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 왔다. 도복의 흰 바탕은 백의민족을 알리는 것이고, 모든 기술용어나 품세 명칭도 한국의 명칭을 사용한다. 태권도는 말하자면 한국의 언어와 얼과 역사까지 알리는 대단한 관광 상품이다. 더욱이 태권도를 수련하고 있는 외국인 수련생 대부분은 스승의 나라 한국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갖고 있다. 나 또한 이탈리아를 상징하는 스파게티와 피자보다 김치찌개와 삼겹살, 청국장과 떡을 즐겨 먹는다. 한복의 고운 색과 선을 좋아하며, 넉넉하고 포근한 한국의 산과 강과 한옥 앞에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태권도는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한국의 건국이념을 바탕으로 단순한 신체의 단련뿐 아니라 정신수양을 통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자신과 타인의 심신을 건강하게 해주는 무도다. 이렇게 소중한 태권도가 정작 아버지의 나라 한국에서는 너무 보편화돼서인지 그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다. 동네 태권도 도장 중에는 어린이 유락시설처럼 낙후된 곳이 많아 한국 정부의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에 태권도 학과를 개설해 태권도의 실기 기술체계뿐 아니라 학문 분야에서도 전문지식을 지도하는 게 내 꿈이다. 그래서 나는 경희대 태권도학과 석사 과정에 진학했다. 한국어 교사 자격증도 땄지만, 한국인의 내면에 깔린 근본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전통문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권도와 사물놀이 같은 한국 전통의 소리가 함께 어울어지면 더 좋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태권도는 이미 외국에서 최고의 관광상품이다. 한국 정부가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 지원한다면 태권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국가 브랜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남창도장만 해도 올해 미국·중국·오스트리아·호주·이탈리아·영국 등지에서 수많은 외국인 수련생이 태권도 때문에 방문했다. 전 세계에는 나와 같은 외국인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마르코 이엔나(Marco Ienna)

1984년 이탈리아 로마 출생.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태권도 수련. 2006년 외국인 최초로 경희대 태권도학과에 입학해 2010년 외국인 최초로 졸업. 현재 경희대 홍보대사와 국제태권도연수원(ITA) 조교이자 강신철남창태권도장 소속.

정리=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 위원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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