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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월드 대 지하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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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쇠고기 91g, 빵 세 쪽, 양상추·양파·치즈·피클 약간, 거기다 ‘며느리도 모르는’ 특별 소스 적당량. 맥도날드의 간판 상품 ‘빅맥’의 실체다. 미국인의 ‘국민 메뉴’라 할 이 고칼로리 햄버거는 요즘 전 세계적으로 하루 수백만 개씩 팔린다. 빅맥이 지구촌 식탁을 점령해 버렸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일찍이 말뿐 아니라 행동에 나선 게 프랑스 농민들이다. 1999년 여름날, 남서부 미요에 짓고 있던 맥도날드 점포를 산산조각 낸 뒤 잔해를 트랙터에 싣고 가 멀리 내다 버렸다. “프랑스 사람은 프랑스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신토불이가 이유였다. 기물 파손죄로 3개월 징역형을 받은 주동자 조제 보베는 졸지에 ‘반(反)세계화의 영웅’ 반열에 올라섰다.

 미국 주도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맥도날드는 흡사 동네북 신세다. 곳곳에서 창문이 깨지고 출입문을 봉쇄당하고 벽보가 나붙기 일쑤다. 미국 정치학자 벤저민 바버가 명명했듯 ‘맥월드(McWorld) 대(對) 지하드’의 대결 구도다. 세계화와 그에 맞서 전통과 고유의 가치를 지키려는 성전(聖戰)이 점입가경이다. 맥월드가 맹위를 떨칠수록 반발도 덩달아 거세진다. 어딜 가나 똑같이 빅맥을 먹고 코카콜라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 ‘판박이 나라’ 신민(臣民)으로 살긴 싫다는 것이다.

 “이들 브랜드의 지나친 확산이 역풍을 불러왔다”는 지적(브라이언트 사이먼 미 템플대 교수)도 있다. 중국 자금성 안에 문을 연 스타벅스가 “중국 역사와 전통을 모욕한다”는 온라인 여론재판 끝에 철수한 사건만 봐도 그렇다. 스타벅스 간판을 내리는 ‘스텔스 전략’마저 써봤지만 황제 24명을 모셨던 유서 깊은 민족의 성지까지 침범한 ‘죄’를 끝내 용서받지 못했다.

 내일부터 이틀간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반세계화 시위가 격화될까 봐 경찰이 초긴장 상태라고 한다. 특히 국제 행사 때마다 단골 화풀이 대상이었던 맥도날드·스타벅스 등의 매장을 시위대가 급습할지 몰라 예의 주시 중이다. 특별히 이번 G20 회의에선 한국의 제안으로 개발도상국 지원 방안을 의제로 다룰 예정이다. 소외감을 느낄 비회원국들을 배려해서다. 그러니 지금껏 ‘그들만의 잔치’로 흐른 데 대한 분노일랑 가라앉히고 ‘평화시위구역’에서 세계화의 공과(功過)를 차분히 논해 보는 건 어떨까.

신예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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