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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시시각각

동북아 영토 분쟁과 새만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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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

국제사회에서 미국과 캐나다만큼 우호적인 사이도 없다. 양국 간 무역(2009년 4296억 달러)은 세계 최대 규모다. 중국이 아니라 캐나다가 대미(對美) 최대 수출국이다. 미국·캐나다 국경(8891㎞)은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이자 가장 평화적인 국경이다. 군사적인 관점에서는 ‘있으나마나 한’ 국경인 것이다.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 그린카드(green card·영주권 카드)를 자판기에서 꺼낸다”는 조크가 있을 정도로 노동력 이동도 자유롭게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는 아직도 머차이어스실아일랜드(Machias Seal Island), 노스록(North Rock) 등 6개의 영토 분쟁이 있다.

 미국·캐나다 관계가 보여주는 것처럼 국제사회의 ‘단짝’도 땅 문제가 걸리면 한 치의 물러섬도 있을 수 없다. 국제정치사를 보면 국가의 존재 의의는 최소한 영토를 수호하고, 기회가 생기면 최대한 영토를 확장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토는 주권·국민과 함께 국가를 구성하는 3대 요소 아닌가. 최근 동북아시아를 달구고 있는 것도 중국·일본의 센카쿠(尖閣, 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토 분쟁과 러시아·일본의 쿠릴열도 분쟁이다. 분쟁 지역에 묻혀 있다는 막대한 천연자원이나 지정학적 중요성을 따지기 전에 “땅을 빼앗기는 정부는 정부도 아니다”는 신념이 지상명령(至上命令)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소한 수십 년 전부터 땅에 대한 이러한 집착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학계에서 제기돼 왔다. 특히 미국 정치학자인 리처드 로즈크랜스는 『무역 국가의 부상』(1986년)과 『가상 국가의 부상』(1990년)을 집필해 국가에 영토의 중요성은 ‘지나간 일’이라고 주장했다. 로즈크랜스는 선진국들이 이미 영토 야심을 접고 세계 경제에서 자국이 차지하는 비중을 늘리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영토보다는 자본·노동·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땅에 아직 집착하는 나라는 후진국이라는 것이다.

 학자의 주장에는 물론 오류도 있고 과장도 있다. 그러나 로즈크랜스 교수의 주장에는 분명 현실과 부합하는 진실이 담겨 있다. 세계 영토 순위에서 107위에 불과한 한국이 주요 20개국(G20)의 반열에 들 수 있었던 것도 영토 외에 많은 것들이 국력 증진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영토에는 ‘국가의 사활적 이익’이자 ‘시대착오적 목표’라는 이중성이 있다.

 영토와 관련된 우리의 당면 과제 중에는 새만금 사업이 있다. 1월 28일 ‘새만금 내부 개발 종합실천계획’이 발표되었고, 4월 27일 새만금 방조제 준공식이 열렸다. 올해 말이면 새만금 사업의 세부 개발 계획을 담은 ‘새만금 종합계획’ 구상이 완성된다. 새만금 사업도 ‘영토의 이중성’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새만금 사업은 우리 국민 1인당 3평(약 10㎡)이나 되는 땅이 돌아갈 만큼의 대단위 국토 확장 사업이다. 영토 확장이 사활적 국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거대한 영토 확장(정확히는 영해의 영토화)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자축할 만하다. 그러나 ‘영토는 시대착오’라는 관점에서 보면 “환경과 갯벌을 잃게 만든 사업이 아니냐”는 지적이 더욱 뼈아플 수 있다.

 새만금 사업을 지지하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새만금은 단순히 우리 땅을 넓히는 사업이 아니라 우리가 잃은 것을 벌충하고도 몇백 배, 몇천 배 더 많은 과실을 우리에게 선물할 수 있는 미래 성장동원이 되는 사업이라는 주장이다. 정부의 계획은 새만금 땅을 환경친화적인 산업단지, 관광단지, 과학교육벨트, 농업용지, 생태환경용지로 탈바꿈시켜 신성장동력을 창출하는 녹색성장 사업 중심으로 삼는 것이다.

 중국·일본·러시아 간의 동북아 영토 분쟁은 동북아 지역 통합의 브레이크로 등장했다. 동북아 지역 내 모든 국경이 ‘있으나마나 한’ 국경이 되는 날은 더욱 멀어졌다. 우리의 새만금 사업은 동북아 번영과 평화의 엔진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정부가 곧 발표할 ‘새만금 종합계획’에 해답이 담겨 있기를 기대한다.

김환영 중앙SUNDAY 지식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