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離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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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헤어져 흩어짐이 이산(離散)이다. 주로 가족이 살아서 이별(離別)한 뒤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일을 가리킨다. 가족이 뿔뿔이 헤어지는 경우야 흔치는 않겠지만, 가혹한 정치인 학정(虐政)이 펼쳐지고 피비린내 나는 전란(戰亂)이 벌어지는 경우에는 달랐다.

 이 단어가 등장하는 때는 대개가 일반 사람이 삶을 이어가기 어려운 가혹한 환경과 관련이 있다. “기러기 오지 않고, 변방에서는 싸움이 벌어졌다. 떠났던 제비 돌아오지 않으니, 가족 모두 흩어졌다(鴻雁不來, 遠人背叛. 玄鳥不歸, 室家離散)”는 표현이 나온다. 그에 앞서 맹자(孟子)는 군주(君主)가 백성을 고생시키면 “부모가 추위에 떨면서 굶주리고, 형제와 가족이 흩어진다(父母凍餓, 兄弟妻子離散)”고 말했다. ‘이산’이 등장하는 과거의 용례들이다.

 가족이 흩어지는 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가장 큰 슬픔의 하나다. 중국에서는 전쟁 등으로 처자식과 헤어져 살아야 하는 경우를 ‘처리자산(妻離子散)’이라는 성어로 정착시켰다.

 전패(顚沛)와 유리(流離)도 같은 단어다. 진창에 넘어지거나 고꾸라지는 것이 전패다. 그런 상황에 처한 뒤 사방을 떠돌아다니는 것이 유리다. 이 두 단어를 합쳐 쓰는 전패유리(顚沛流離)가 전쟁 등의 참화(慘禍)를 당해 가족이 흩어져 떠돈다는 뜻이다.

 떠돌이 신세로 전락해 고향의 집을 잃는 것이 ‘유리실소(流離失所)’, 그런 처지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 ‘유리전사(流離轉徙)’다. 그 반대로 태평한 시절에 고향을 지키며 편안히 살아가는 일을 ‘안가낙업(安家樂業)’ ‘안가낙호(安家落戶)’로 표현했다.

 “옥으로 부서질지언정, 기와로는 남지 않겠다(寧可玉碎, 不能瓦全)”는 말이 있다. 구차하게 생명을 구걸하느니 차라리 멋지게 삶을 바치겠다는 뜻의 ‘옥쇄(玉碎)’라는 말이 나오는 원전이다.

그러나 기왓장 같은 삶이라도 부지하고 싶은 게 사람의 욕망이다. 그 때문에 ‘와전(瓦全)’에는 헤어진 부부가 다시 만난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60년 전 이 땅에서 북한이 벌인 도발, 그리고 3년 동안의 전쟁이 남긴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상처는 너무 컸다. 그 전쟁으로 서로 흩어졌다가 이제야 생사를 확인한 남북의 이산인들이 요즘 매스컴에 다시 올랐다. 애를 끊는 단장(斷腸)의 아픔이 생생하다.

유광종 중국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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