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여성 많이 고용하면 법인세 감면 등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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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공기업과 1000인 이상 대기업 중 여성을 많이 고용한 기업은 정부와 조달 계약을 할 때 가산점을 주는 등 각종 혜택을 받게 된다. 이 기업들은 직급별 남녀 근로자 현황을 매년 정부에 보고하고, 여성 고용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않을 경우 여성 고용 확대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노동부는 27일 여성 고용 확대를 위한 '적극적 고용개선 조치(Affirmative Action)'를 포함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노동부 이완영 평등정책과장은 "현재는 단순한 남녀차별 금지로 여성 고용 확대를 유도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기업에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적극적 조치로 여성인력 고용 확대를 유도할 것"이라며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우수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1~3% 감면해 주고 ▶정부 조달계약상 가산점을 주며 ▶인사조직 관련 컨설팅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 등을 재정경제부와 협의 중이다. 또 공기업 및 정부 산하기관은 경영평가에서 가산점을 줄 방침이다.

정부가 미국 등에서 이미 실시하고 있는 적극적 조치를 도입하는 이유는 일부 기업이 여성 인력 고용을 늘리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여전히 미흡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노동부가 지난해 공기업(정부 산하기관 포함) 101개와 근로자 1000인 이상 대기업 400곳을 대상으로 여성 고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공기업의 여성 고용 비율은 20.9%, 대기업은 33.3%로 1000인 미만 기업의 평균(37.3%)치를 밑돌았다.

또 정규직 가운데 여성 비율은 공기업 15.5%, 대기업 25.1%로 1000인 미만 기업(35.2%)의 평균보다 낮았다.

정철근 기자

*** 노동부 입법예고 배경
"여성 인력 활용 안 하면 국민소득 2만 달러 못 가"

"인터넷 기업에선 여성의 섬세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싸이월드의 '미니룸' 같은 서비스는 꾸미기를 좋아하는 여성의 기호를 반영한 아이디어지요. "

SK커뮤니케이션즈의 박지영(여.29)부장은 인터넷.정보기술(IT) 기업에서 여성 인력 활용은 이제 대세라고 강조했다. 박 부장은 1999년 싸이월드에 입사한 이후 5년 만인 지난해 종업원 600명이 넘는 대형 인터넷 기업의 부장이 됐다.

그가 개발한 싸이월드의 미니룸 서비스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현재 미니룸에서 사용하는 사이버 화폐인 '도토리'의 하루 매출이 2억원에 달할 정도다. 이 덕분에 SK커뮤니케이션즈의 매출은 2003년 545억원에서 올해 2000억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현재 이 회사의 팀장급 39명 중 10명이 여성이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2003년 8월 싸이월드를 인수했고 당시 SK커뮤니케이션즈의 팀장 27명 중 박 부장이 유일한 여성이었다.

◆ 여성 관리자.전문직 늘어=IT 업종과 일부 앞서가는 기업일수록 여성인력 활용이 활발하다.

삼성SDS가 지난해 공채한 인력 중 여성의 비율은 34%에 이른다. 2002년(18%)의 두 배 가까운 수준이다. 이 회사는 2010년까지 여성인력 채용률을 50%, 과장급 이상 여성관리자 비율을 35%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LG CNS는 전체 5800명의 임직원 가운데 여성이 21%를 차지하고 있다. 과장 이상 관리자 2400여 명 가운데 15%(350여 명)가 여성이다.

CJ그룹은 주력 상품군의 소비자 중 여성이 많다는 점에서 2000년부터 여성 인력의 채용을 늘려왔다. 2002년 전체 신입사원의 15%가량이던 여성 인력 비율이 2004년 하반기 공채에선 37%로 뛰었다. 이 회사의 여성 인력들은 '햇반'등 소비자 심리를 잘 반영한 히트상품을 개발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지난해 말 이 그룹 최초로 여성 임원에 오른 CJ GLS 장계원(54)상무는 여성 후배들에게 "성적 정체성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프로의식을 갖고 열심히 하면 예전보다 훨씬 좋은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건설업 등 전통적으로 여성 비중이 낮은 업종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있다. 현대건설의 경우 지난해 공채사원 96명 중 16명이 여성이었다. 2003년 신입사원 95명 중 여성이 6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눈에 띄는 변화다. 서울 신문로 건축공사 현장에서 근무하는 현대건설 박인주(33.여)과장은 "신입사원 때만 해도 현장에 가면 다른 직원들이 신기해 했는데 요즘은 워낙 여성이 많아져 자연스러워 한다"고 말했다.

◆ 육아와 '유리 천장'이 걸림돌=기업의 여성 인력 고용이 늘고 있지만 이들이 직장 내에서 겪는 어려움은 여전하다.

여성이 일을 중단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는 가장 큰 요인은 육아문제다. 본지가 2월 전국의 332개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1%가 '결혼.출산.육아로 인한 업무 단절과 생산성 저하'를 여성 인력 활용의 첫째 걸림돌로 꼽았다.

미래여성연구원 김미경 원장은 "믿고 맡길 만한 보육시설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는 한 여성의 취업이 증가한다 해도 지속적인 고용으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직장의 핵심 업무에 진입할 기회가 차단되는 '유리벽'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승진이 되지 않는 '유리 천장'도 여성 고용의 문제점이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이주희 교수는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하는 확률이 남성은 68%인 데 비해 여성은 37.5%에 불과하다"며 "여성도 고위직까지 올라갈 수 있어야 우수한 여성 인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여성 인력 활용은 생존 전략=노동부 노민기 고용정책실장은 "여성인력을 활용하지 않고서는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열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주요 선진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국민소득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로 가는 과정에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크게 높아졌다.

노동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18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인 국가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53.4%였으나 2만 달러인 국가는 60.8%, 3만 달러인 국가는 68.3%, 4만 달러인 국가는 75.7%로 나타났다. 노동부는 여성 고용률이 5%포인트 높아질 경우 GDP 증가 효과가 120조~180조원에 이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성 고용률은 지난해 49.8%였다.

우리나라의 낮은 여성 인력 활용률은 국가경쟁력을 깎아먹고 있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의 지난해 국가경쟁력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29위로 전년보다 11단계 추락했다. 개별 항목에서 가장 순위가 낮은 것은 기업들이 자주 거론하는 노사관계(92위)가 아니라 민간분야의 여성활용(102위)이었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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