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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되지 않는 날 것, 아시아 신한류의 원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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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무대 위 밴드가 뛰기 시작했다. 지하 클럽을 가득 메운 100여 명의 관객도 따라 뛰었다. “아하하하 나중에~ 아하하하 다음에~”라는 후렴구에 이르자 보컬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전자기타와 베이스는 복고풍 멜로디를 연주하고 드럼은 강한 비트로 리듬을 맞췄다. 지난달 29일 오후 10시40분 홍대 라이브 클럽 ‘FF’에서 4인조 혼성 록 밴드 ‘아침’의 공연이 한창이었다. 클럽 벽에는 각종 포스터와 그래피티가 그려져 있었고 지하실 특유의 냄새와 습한 공기가 느껴졌다. 관객들은 밴드 연주에 맞춰 빈손으로 기타 연주를 하거나 무대 뒤에서 춤을 추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공연을 즐겼다. 공연이 끝날 무렵 5분 거리의 라이브 클럽 ‘드럭(DGBD)’에선 4인조 혼성 밴드 ‘아일랜드시티’의 공연이 시작됐다. 여성 보컬의 강한 노래가 클럽에 울려 퍼지자 조용하던 관객들의 몸이 음악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중앙SUNDAY 취재진 10명이 돌아본 10월의 마지막 금요일 밤 홍대 인근 클럽들은 나름의 독특한 음악을 품어 내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마지막 금요일) 있는 ‘클럽데이’인 이날은 2만원짜리 티켓 한 장으로 전체 60개 클럽 중 20여 개 클럽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보고 춤도 출 수 있다.

같은 시각 재즈클럽 ‘에반스’에는 100여 명의 관객이 모였다. 여성 싱어송라이터 ‘수상한커튼’은 드럼·콘트라베이스·피아노 반주에 맞춰 기타를 치며 노래했다. 무대로 끌려 나온 관객 세 명이 탬버린과 트라이앵글을 밴드와 함께 연주하자 객석에선 함성과 웃음이 터졌다.

막 건져 올린 물고기처럼 거칠고 파닥거리는 그들의 음악을 한마디로 표현하긴 어려웠다. 음악
평론가 임진모씨는 “가요계가 기획사가 만든 가수들에 의해 돌아간다면 홍대 클럽에선 아티스트들이 자기만의 음악을 실험한다”고 평가했다. 그 속에서 ‘크라잉넛’ ‘노브레인’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젊은이가 열광하는 인디밴드가 성장했다.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크라잉넛·노브레인을 발굴한 이석문(50)씨는 “홍대의 밴드들은 연예인이 아니라 음악으로 먹고사는 걸 꿈꾸는 친구들”이라고 설명했다.

얼마 전 ‘슈퍼스타K 2’로 큰 인기를 얻은 장재인(19)씨도 홍대 클럽에서 실력을 다듬었다. 올해 2월부터 ‘오뙤르·프리버드·타’ 등에서 20여 차례 공연한 장씨는 “홍대가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내가 추구하는 음악이 대중적이지 않아 차근차근 준비하는 마음으로 홍대 클럽 문을 두드렸다”고 말했다. 20여 년째 홍대에서 음악을 하고 있는 3호선 버터플라이 보컬 성기완(43)씨는 “홍대는 자생적인 공간이다. 제아무리 SM(SM엔터테인먼트)이라고 해도 치고 들어오지 못한다. 사육되지 않은, 스스로 만들면서 커 가는 음악적 공간이 홍대 클럽”이라고 말했다.

밤 12시가 넘어가자 홍대 댄스클럽에선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밤 12시50분 일렉 음악을 트는 댄스 클럽 ‘M2’ 앞은 300여 명의 사람이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클럽 안은 거대한 수조 같았다. 클럽을 메운 1000명 가까운 클러버는 멜로디 없는 중저음의 비트가 만들어 내는 파도에 흔들리듯 일렁였다. 오전 2시30분 힙합 클럽 ‘nb2’는 만원 버스를 연상케 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코가 앞사람의 뒷머리에 닿을 정도로 딱 붙어 무릎과 어깨를 움직였다. 독일인 다비드(26)는 “유럽에서 클럽에 많이 다녔지만 클럽이 밀집해 있으면서 클럽 밖까지 북적거리는 곳은 홍대가 유일하다. 홍대 자체가 거대한 클럽 같다”고 말했다.

홍대에서 20여 년째 DJ로 활동하고 있는 클럽 M2 사장 유백열씨는 “홍대의 에너지는 클럽에서 나온다. 지금의 홍대 전성기는 클럽 인구가 확산되면서 주변 상권까지 확장됐기 때문”이라며 “한국 대중음악의 시작은 항상 홍대였다. 90년대 댄스 음악, 2000년대 테크노도 그랬다. 아시아 신한류 바람을 일으키는 대중음악 제작자들이 홍대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갔다”고 말했다.

임현욱 기자 g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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