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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한 권리 주는 게 학생인권 보장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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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인권은 기본적으로 인간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권리를 의미한다. 학생인권조례를 논의할 때는 권리의 핵심 개념인 ‘능력’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권리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에게 권리를 주는 게 당연하다. 인권학이 말하는 개인적 인권 내용에는 신체보존권, 최소 목적행위권(최소한의 목적 추구를 위한 능력 발현과 여건 마련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 목적 증가 행위권(목적 증가를 위한 능력 계발과 여건 개선의 권리)이 있다. 능력과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할 신체보존권을 제외한 나머지 두 권리는 인간발달과 교육의 특수성을 감안해 다뤄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재 논의되는 학생 인권 문제는 연령과 발달에 따른 능력의 변화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는 사회문화적 제한을 이해·수용할 수 있는 능력과는 상관없이 모든 연령의 학생은 “복장·두발 등 용모에 있어서 자신의 개성을 실현할 권리를 가진다”(제11조 제1항)고 보장한다. 또한 모든 학생은 논리의 미성숙이나 부족한 정보검증 능력과는 상관없이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보장받는다”(제16조 제1항)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개성의 발달이나 성숙한 의사판단 능력의 계발을 위해 권리는 일시적으로 제한하면서 가르치는 것이 더 교육적이지 않을까. 다양한 권리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그렇게 계발된 능력에 상응하는 권리를 적기에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것이 교육적으로 더욱 바람직한 건 아닐까.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유엔협약)’은 생명권·안전권 등 ‘신체보존권’에 해당하는 내용은 무조건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 그 외에 해당하는 인권 내용은 연령과 학습에 따라 제한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청한다. 아동의 발달상황에 맞게 인권을 누리도록 도울 필요를 지적하고, 연령을 고려해 자유의 회복이 다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 점 등 연령과 능력의 발달을 핵심적인 조건으로 간주한다. 유엔협약은 법적·사회적 안전상의 이유에서도 인권이 제한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는 이러한 제한을 간과하고 있다.

 자유와 권리에 대한 그 어떤 정치이론도 ‘능력’이라는 요소를 배제하는 경우는 없다. 아동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철학이론 역시 능력의 발달과 학습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지 않은 경우는 없다. 발달단계에 있는 학생의 인권을 성인의 그것과 동일시하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무의미하다.

 제한 없이 주어진 권리(right)는 권력(power)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학생들의 권력으로 변해버린 학생인권은 교육의 무능화를 초래할 수 있다. 교육의 전문성은 교육 대상의 신체적·정신적 발달과정을 고려해 그에 적합한 학습적·행정적·심리적 처방을 내리는 데에 있다.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의 인권’이라는 특수하고도 중차대한 교육적 사안을 비전문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류성창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