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아이 ‘맡길 곳’ 아닌 ‘믿고 맡길 곳’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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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다.” 우리나라가 왜 세계 최저 출산율을 헤매는지 물을 때마다 나오는 대답이다. ‘맡길 곳’이 아니라 ‘믿고 맡길 곳’이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간 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주요 원인이 바로 그 차이를 간과한 탓이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설립된 보육(保育)시설은 3만3400여 개. 142만여 명이 이용 가능하지만 실제 다니는 아이들은 113만5000여 명에 불과하다. ‘맡길 곳’은 차고 넘친단 얘기다. 그러나 민간 보육시설보다 값싸고 시설·인력의 질도 좋아 부모들이 ‘믿고 맡길 곳’이라 여기는 국공립 시설은 전체의 5.5%인 1826개(2008년 말 현재)에 그친다. 대기자 수가 12만 명에 달해 애를 낳기도 전에 줄부터 선다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다.

 해법은 자명하다. 내년부터 적용될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을 놓고 열린 공청회에서 각계 전문가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한 개선책도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충이었다. 하지만 최종안엔 결국 포함되지 못했다. 민간 시설의 질을 끌어올리겠다는 다짐이 들어갔을 뿐이다. “국민은 밥(국공립)을 먹고 싶은데 왜 정부는 자꾸 빵(민간)을 먹으라고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국공립 시설을 짓는 데 따른 재정 부담이 큰 데다 민간 시설을 억지로 줄일 수도 없다는 게 정부 해명이다. 그러나 중산층까지 보육료를 지원할 돈으로 차라리 국공립 시설을 늘려 달라는 주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수준 이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에 대한 퇴출 시스템도 어떤 식으로든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시설 위주의 보육 정책도 재고해 봐야 한다. 본지 탐사보도에서도 지적됐지만 적어도 만 1세까진 부모가 직접 돌보는 게 바람직하다. 이 시기에 부모와 건강한 애착(愛着) 관계를 형성해야 온전한 성인으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육아휴직 쓰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우리에겐 요원한 얘기다. 엄마·아빠가 번갈아 육아휴직을 내 1년 이상 아이를 돌보고 이후엔 누구나 국공립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스웨덴의 보육 환경이 부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