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글로벌 허브’ 꿈만 꾸면 뭐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며칠 전 취재차 중국 장쑤(江蘇)성 장자강(張家港)시에 있는 장가항포항불수강(張家港浦項不銹鋼) 공장에 들렀다. 포스코의 해외 스테인리스 생산기지인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강가에 만든 대형 부두. 총길이 550m에 연간 물동량 100만t으로 수출입 선박이 물건을 싣고 내릴 수 있는 시설이다. 수출입 부두는 국가 보안시설인데, 외자 유치에 적극적인 중국 정부가 부두를 건설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 것이다.

 인근에서 한창 공사 중인 냉연공장은 포스코가 공장부지 확보 문제로 어려움을 겪자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선 경우다. 공장 부지에 살고 있던 500여 가구가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있도록 철거를 도왔다. 김용민 장가항포항불수강 사장은 “중국이 외자 유치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뛰고 있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소개했다.

 이튿날 들른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 찔레곤의 해외 일관제철소 착공식도 비슷한 풍경이었다. 인도네시아 정부에서 경찰 수백 명을 동원해 행사를 지원할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포스코가 인허가 업무를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전용 창구도 마련해 줬다. 특별경제구역 지정 등 인센티브도 검토 중이다.

 외자 유치를 위해 뛰는 나라들의 움직임은 ‘적극적이고, 빠르게’로 요약할 수 있다. ‘중동의 허브’ 두바이는 토지를 매입해서 분양하기까지 7개월밖에 걸리지 않는다. 중국 상하이는 더 빠르다. 불과 닷새 만에 법인을 세울 수 있다. 이들이 이렇게 열심히 뛰는 이유는 외자를 끌어들여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반면 ‘글로벌 허브’를 꿈꾸는 한국의 현실은 초라하다. 올 상반기 국내 6개 경제자유구역의 외국인 투자는 6건(27억 달러)에 그쳤다. 각종 규제, 복잡한 인허가 절차, 뒤처진 교육·의료 여건 등 고질적인 문제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진출을 꺼린 결과다. 정무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싱가포르·홍콩·상하이 등에 뒤처진 한국이 외자를 끌어오려면 한발 더 공격적으로 치고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국경을 넘어 최적의 입지를 찾고 있다. 우리는 이들 글로벌 기업을 맞을 준비가 돼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