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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묶인' 외국기업 수도권 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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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한국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려던 외국 기업들의 계획이 차질을 빚고 있다. 수도권에 외국 기업의 대규모 공장 신설을 허용하는 법안 개정이 늦어져서다. 지금은 외국 기업이라도 수도권에 자본금이 80억원 이상이고 직원이 300명이 넘는 공장은 새로 지을 수 없도록 묶여 있다.

이 때문에 한국쓰리엠은 26일 경기도 화성에 LCD필름 공장을 착공하려던 것을 미뤘다. <본지 5월 10일자 8면> 또한 LCD용 유리 기판을 만드는 일본의 NHT는 투자 규모를 줄이는 방법으로 공장 건축 허가를 얻어 지난 3월 착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1억5000만 달러(1500억원) 자본금에 600명 규모의 공장을 세우려던 것을 일단 자본금 5000만원, 직원 180명으로 줄여 허가받았다.

평택에 같은 공장을 세우는 일본 NEG도 자본금 3300억원, 고용 470명이던 투자 계획을 자본금 360억원, 고용 140명으로 줄여 다음달 중 착공할 예정이다. <표 참조> 이들 두 회사는 규제가 풀리는 대로 투자 규모를 원상 회복할 것으로 알려졌다. LCD업계 관계자는 "투자가 차질을 빚는 데도 발을 빼지 않는 게 다행"이라며 "한국의 LCD 부품 시장 규모가 워낙 커 불편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가 투자 유치도 난항이다. 경기도는 상반기 중에 독일의 자동차 부품 업체, 영국의 독감 백신업체와 각각 2억 달러(2000억원) 규모의 투자 계약을 할 예정이었다. 도 관계자는 "계약했다가 예정대로 착공을 못 하면 경기도가'신용불량' 낙인이 찍힐까봐 협상을 늦추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는 자동차.LCD 등 첨단 25개 업종에 대해 외국기업의 수도권 내 대규모 투자가 올 초부터 이뤄지도록 법령을 개정할 방침이었다. 그러나 관련 법안을 행정중심도시 건설에 따른 수도권 종합 발전 대책과 일괄 처리하기로 하면서 개정이 계속 늦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 기업들이 투자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수도권에 아예 공장을 새로 짓지 못하는 국내 대기업들이다.

LG전자.LG화학 등은 LG필립스LCD 인근에 LCD용 부품 및 LCD TV 공장 등을 세울 수 있도록 법령을 고쳐 달라고 지난해 6월 정부에 건의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답을 받지 못하고 있다. LG가 이 같은 LCD 종합단지를 만들 경우 연간 1000억원가량의 물류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현재 대기업에 대해서는 수도권에서 자동차 등 14개 업종만, 그것도 신설은 안 되고 증설만 허용하고 있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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