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의 정치Q] 설화 겪은 유홍준 문화재청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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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 정치전문기자

현 정권의 고위 관료 중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두 가지 기록을 갖고 있다. 먼저 그는 최고의 스타 관료다. 강금실.이창동씨는 장관이 되기 전엔 별로 유명하지 않았다. 유 청장은 이미 남북한 문화유산 답사기를 책으로 내 300만부나 팔았다. 그는 수많은 여성.학생.지식인 팬을 갖고 있다.

그의 설화(舌禍) 또한 기록이다. 최근엔 전북대박물관의 외래종 나무에 대해 "못생겼으니 베어버리라"면서 "박정희 시대에 많이 심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신 장군 유적지인 현충사가 박정희 기념관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이 쓴 광화문 한글 현판을 내리려 해서 큰 소동을 빚었다. 유 청장은 1974년 민청학련사건으로 1년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그 후론 "문화재에 일생을 걸겠다"며 운동권과 거리를 두었다. 그래서 민청학련 동지인 이해찬 총리나 유인태 의원 등에 비해 반(反)박정희 투쟁경력이 짧다. 그런데도 그는 현 정권 제1의 '박정희 저격수'가 되어 있다. 그를 보고 사람들은 "박 대통령에 대한 원한이 깊은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는 10일 기자에게 "나는 박 대통령을 인정하며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일종의 진심고백이었다.

'인정'은 문화재에 대한 박 대통령의 사랑 때문이란다. 유 청장은 "역대 대통령 중 박 대통령이 문화재 발굴.복원에 애정과 공적이 가장 컸다"며 불국사.석굴암.현충사.천마총.도산서원.추사(秋史)고택 등을 꼽았다. 그는 "다만 박 대통령이 전문가를 가까이에 두고 보다 깊이 생각했더라면 일부 잘못된 복원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안'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때문이란다. 그는 90년대 초 '사회평론'에 이 글을 연재하면서 박 대통령 시절에 이뤄진 문화재 복원을 많이 비판했다. 그는 "당시 민주화 분위기에서 진보적 매체에 글을 쓰느라 문화재에 대한 박 대통령의 공적은 소개하지 못하고 일부 부작용만을 거론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앞으로 나오는 답사기에는 과오뿐 아니라 공적도 자세히 적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그는 수치까지 들어가며 박 대통령 시절의 경제발전도 언급했다.

유 청장은 자신의 박정희 파동에 대해 "문화재 수장(首長)으로서 사회적 파장에 대한 고려가 적었다"고 시인했다. 그러곤 "재야 문화운동가 때와 국정을 책임진 고위 관료 때 같은 말이라도 파장이 어떻게 다른지를 크게 배웠다"고 말했다.

유 청장은 자신이 존경한다는 시인 김지하 이래 정치.사회적 파도에 가장 거칠게 휩쓸린 미학(美學)전문가로 기록될 것 같다.

김진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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