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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이 보건복지재정 '뒷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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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부는 지난해 담뱃값을 500원 인상한 뒤 연내에 다시 500원 올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차관회의에서 인상 시기를 올해 7월로 이미 합의한 바 있기 때문에 조만간 애연가들의 작은 즐거움이 더욱 왜소해지고 담배 한 개비로 정을 나누던 시절도 모두 "호공(虎公)들의 옛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보건복지부는 담뱃값을 올려 남성뿐 아니라 여성과 청소년의 흡연율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이를 통해 조성된 재원을 흡연자를 위한 금연상담과 치료서비스 제공에 쓰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국민은 담뱃값이 오를 때마다 그 인상 내역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오른 500원의 내역을 구체적으로 보면 담배부담금이 갑당 150원에서 354원으로 204원 증액되고 나머지는 담배소비세 131원, 지방교육세 65.5원, 엽연초생산안정화기금 5원, 폐기물부담금 3원, 부가세 41원, 소매인 마진 50원으로 구성돼 있다. 따라서 인상을 주도한 것은 흔히 담배부담금으로 불리는 국민건강부담금이다.

국민건강부담금의 수입은 국가의 일반회계에 편입돼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일반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재원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건강증진기금이라는 특별한 기금으로 흘러들어간다. 기금은 법률이 정하는 각종 보건복지사업을 위해 쓰이며, 현재는 기금 수입의 65%인 약 9300억원이 건강보험재정의 적자를 메우는 데 지출된다. 쉽게 말하자면 흡연자들이 국가를 대신해 건강보험의 운영적자 대부분을 떠맡고 있는 셈이다.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다. 건강보험의 적자는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줄이고 의사들의 과다 진료와 진료비 청구를 까다롭게 심사해 재정을 건전화함으로써 해결할 일이지 어찌 애꿎은 흡연자들이 뒷돈을 댄단 말인가. 정부도 이러한 비정상적인 건강보험재정 문제를 인식하고 법률을 통해 기금이 건강보험에 투입되는 기간을 2006년까지로 제한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지금부터다. 특히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지난해 인상된 건강부담금을 통해 올해 거둬들이는 기금의 규모가 약 1조4000억원에 이르며, 만약 올해 다시 담뱃값이 500원 인상되면 기금의 규모는 2조1000억원에 육박한다는 사실이다. 142만 명에 달하는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에게 올해 지출하는 예산총액이 1조9880억원을 간신히 넘기는 것에 비하면 실로 천문학적인 액수다. 보건복지부는 이 돈의 상당부분을 급속한 고령화에 따르는 공공보건인프라 확충 등에 사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가의 일반예산을 가지고 처리해야 할 일이며 특별한 목적 때문에 예외적으로 설치되고 운용되는 기금 제도와는 성격상 정면으로 배치된다.

원래 기금이나 특별회계는 국가재정운영의 투명성.건전성.책임성을 해칠 수 있는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특별하게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가 있는 경우에 허용된다. 그렇다면 이미 국민건강증진기금은 그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며 이른 시일 내에 폐지해야 마땅하다. 기획예산처와 감사원도 이미 국민건강증진기금의 폐지 또는 유사 기금과의 통폐합을 권고한 바 있다.

대안으로는 재원을 다양화해 목적세의 성격을 띠는 '건강세'를 신설하고 일반회계에 편입한 뒤 보건복지재정을 지원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또는 기능이 중첩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재정과 통합, 국민건강보험기금을 신설해 건강보험재정을 지원하고 건강증진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

나랏돈 한 푼도 눈먼 돈이 있겠는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올해 연두교서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납세자가 낸 단 1달러도 현명하게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쓸 수 없다."

김성수 한양대 교수·공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