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여론 떠보기로 경제부총리 뽑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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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제부총리 인선 방식에 문제점이 적지 않다. 청와대가 후보군을 흘렸다가 반응이 나쁘면 다른 후보를 또다시 내놓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여론재판식 인사검증은 해당자에 대한 사생활 침해는 물론 인사 포퓰리즘이라는 점에서 그 해악이 심각하다.

당장 1차 후보군에 올랐던 열린우리당 강봉균 의원과 윤증현 금감위원장이 날벼락을 맞았다. 청와대는 경제부총리 후보가 이들로 압축됐다고 비공식으로 밝혔다. 그랬다가 강 의원 장남의 병역 문제가 불거지고 참여연대가 윤 위원장의 환란시 역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신명호 전 아시아개발은행 수석부총재와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이란 카드를 차례로 내놨다. 강 의원은 재경부 장관으로 기용될 때와 지난해 17대 총선 때 걸러졌던 아들 문제로 다시 공개적 망신을 당한 꼴이 됐다. 이런 흠집이 난 채 인선에서 탈락한다면 강 의원에게는 앞으로 공직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이다. 윤 위원장도 졸지에 구설에 올랐다. 금융기관을 감독할 금감위 최고책임자로서 난감하게 됐다. 어떤 흠결 때문에 부총리 임명은 안 된다면서 금감위원장으로는 괜찮다는 논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올 들어 이기준 교육부총리와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사전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한 탓으로 떠나보냈다. 물론 그런 실수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공직 후보를 여론의 시장에 던져놓고 거기서 살아나오면 임명하겠다는 청와대의 태도는 무책임의 극치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이 전 경제부총리의 사표를 수리한 뒤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여론재판이 끝난 상황이라 더 이상 부총리의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돼버렸다"고 불만을 토로했었다. 그런데 그 후임자를 찾으면서 청와대가 앞장서서 여론재판을 유도하고 있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체계적으로 차분히 검증해야 한다. 청와대가 국세청.경찰청 등의 손발을 이용하여 얼마든지 조용히 검증할 수 있다. 만일 법적 제약이 있다면 법을 고쳐서라도 시스템에 의한 검증을 하는 게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