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기의 마켓 워치] 미국 양적완화, 길게 보면 일희일비할 게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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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양적완화 결정을 앞두고 글로벌 증시가 바짝 숨을 죽이고 있다. 이번 조치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긴급 대응책이 나온 뒤 최대 이벤트로 꼽힌다. 양적완화 규모가 얼마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글로벌 경제와 자산시장은 큰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3일 Fed의 공개시장위원회(FOMC)가 발표할 양적완화 규모에 대해선 ‘극단적 예측’이 난무한다. 당초 5000억~1조 달러 범위에서 거론되던 예측치의 진폭은 시간이 흐를수록 확대돼 현재 2000억~2조 달러로 벌어져 있다. 얼마가 될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솔직한 고백으로 들린다. 그만큼 시장은 큰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양적완화의 불확실성을 둘러싼 시장의 우려 또한 극단으로 쏠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먼저 한쪽의 투자자들은 돈을 푸는 규모가 기대에 못 미치지 않을까 잔뜩 긴장한다. 만약 FOMC가 풀 돈이 2000억~3000억 달러에 머물면 시장은 실망감에 휩싸이고 주가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걱정한다. 이들은 단기적 안목에서 시장에 대응하는 세력이라 하겠다.

 다른 한쪽에는 장기적 안목의 투자자들이 버티고 있다. 이들은 거꾸로 1조 달러 이상의 과도한 돈이 풀리지 않을까 우려한다. 물론 단기적으론 주가를 화끈하게 밀어 올릴지 모르지만, 자칫 거품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잉 유동성은 결국 인플레이션을 초래해 실물경제의 안정적 회복 흐름까지 해치게 될 것이란 게 이들의 걱정이다. 2~3년을 보며 포트폴리오를 짜는 연기금이나 뮤추얼펀드의 입장에선 후유증을 수반하는 유동성 장세가 오히려 독(毒)이다.

 이런 와중에 사람들이 별로 주목하지 않은 변수가 있다. 기업들의 3분기 실적 발표가 그것이다. 지난주로 대충 마감된 3분기 어닝시즌 결과를 보면 미국의 경우 무려 80%에 달하는 기업이 시장의 예측치를 상회하는 실적을 내놓았다. 거시경제 지표의 부진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미국 기업들은 달러 약세와 구조조정 효과에 힘입어 돈벌이를 잘했다.

 증시의 가장 중요한 기초에는 흔들림이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주가 흐름이 더 바람직할까. 실적을 기반으로 차근차근 바닥을 다지며 올라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여기에 유동성 기름을 부어 한판 화끈한 잔치를 벌인 뒤 부작용에 시달리거나 긴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까.

 과거 경험을 돌아보면 시장은 스마트했던 적이 많다. 장기적 관점의 투자자들이 이겼던 사례가 많았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그럴 것으로 기대해 본다. 만약 양적완화 규모가 5000억 달러 이하로 나오면 단기 투자자들은 동요하며 실망 매물을 내놓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 투자자들은 이를 오히려 좋은 주식을 싸게 살 기회로 삼을 것이고, 시장은 다시 장기 상승추세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1조 달러 이상으로 결정되면 단기 투자자들은 환호하며 주식 매수에 열을 올릴 것이다. 그러나 장기 투자자들은 점차 매물을 늘리며 미래의 리스크에 대비할 것이고 시장은 다시 주저앉을 공산이 크다. 장기적 관점에 선다면 양적완화 결과에 일희일비할 게 없다. 스마트한 투자자는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리스크를 관리의 대상으로 여길 따름이다. 그러나 예측불가의 불확실성은 무서워한다. 3일은 양적완화라는 불확실성이 제거되는 날이다.

김광기 경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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