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오후 8시20분이 조금 넘은 시간. 나경원 최고위원이 라디오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짝퉁’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대충토론’ 코너가 막 시작하고 ‘너경원’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너경원’ 만난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은 너경원입니다.”
또박또박한 말투로 개그우먼 전영미씨가 모사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나 의원이 말했다. “아휴, 떨려서 못 듣겠네.”
이때 스튜디오 안에서 최양락씨가 대사를 읊었다.
“참, 예쁘시네요… 예쁘단 얘기 많이 들으시죠?”
‘너경원’에게서 당연하다는 듯 답이 날아왔다. “지겹죠.”
살짝 긴장했던 나 의원이 터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휴, 떨려서 못 듣겠네”
이어 등장한 MB와 ‘너경원’이 나눈 대화의 주제는 역시 대선을 상징하는
“그럼 언제? 차기 말고 차차기 어때요? 차차차기 할까?”(MB)
“아휴, 호호호” (너경원)
라디오 부스 밖의 나 의원도 ‘너경원’처럼 “호호호” 웃었다.
“너경원님 오늘 부담스러우셨나요. 밖에 진짜로 나경원 의원께서 방문해 주셨습니다”라고 최양락씨가 마무리하며 코너를 마쳤다.
나 의원이 나머지 생방송이 끝나기를 기다려 제작진과 만났다. ‘너경원’을 맡은 전영미씨와도 처음 대면했다.
▶전영미=“긴장을 많이 해서 평소보다 너무 안 비슷했어요.”
▶최양락=“(나 의원이) 수더분한 인상은 아니라 영미가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컸나 봐요.”
▶나경원=“저 원래 털털해요. 제가 너무 똑 부러진 이미지로 나오는데 제 표정이나 말투가 변함없는 건 아마 판사 할 때 훈련을 받아서 그런 거 같아요. 재판 때 판사가 고개를 조금만 움직여도 피고는 억장이 무너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표정하고 절대 웃으면 안 된다는 게 습관이 들어선지… 옛날에 학교 다닐 때도 알고 보면 생각보다 털털하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앞으로 ‘너경원’도 털털하게 해 주세요.”
나 의원이 생각하는 나경원-너경원의 싱크로율(원본과 같은 정도)은 90% 이상이란다. 그는 “제가 말하는 습관을 다 알고 계시더라”며 감탄했다. ‘너경원’은 박근혜 전 대표 성대모사에 이어 전씨가 떠올린 여성 정치인 캐릭터다. 그가 “특징을 잡기가 쉬워 하루 만에 파악했다”는 나 의원의 말투와 습관 중엔 정작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기사 읽고 깜짝 놀랐잖아요. 여자들이 ‘~해요’라고 말하면 사석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전 ‘~습니다’라는 어미를 쓰는데 그것도 알고 계시고. 말하는 중간에 ‘어, 어’ 많이 넣는 버릇이 있는 건 저도 몰랐어요. 전당대회 연설 준비할 때 보좌진이 말해 줘서야 알았는데, 그걸 딱 넣으시더라고요. 전문가는 전문가다 싶었어요.”
생방송을 내내 지켜본 나 의원은 방송에 나오는 다른 정치인의 성대모사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표와 직접 대화하면서 알게 된 그들의 습관과 말투에 대해 제작진에 귀띔해 주기도 했다.
“박 전 대표님 목소리로 아까 ‘출뀨’라고 하셨는데, 한나라당 여성 의원 모임에서 농담을 들었을 땐 다르게 말씀하셨어요. ‘출껴’라고. 또 대통령은 목이 안 좋아서 가끔 헛기침을 한 번씩 하세요. 어떤 날은 좀 심하고, 어떤 날은 덜하지만 그런 특징이 있어요. 근데 배칠수씨도 정말 똑같이 하시네요. 제가 대통령께 한번 말씀 드려야겠어요.”
나 의원의 이어진 말에 제작진은 “이러다 대통령도 오시면 어떡하나”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다.
나 의원은 난생 처음 개그의 소재가 된 게 “영광”이라고 했다.
“정치인이 국민에게 기쁨을 드려야 하는데, 여러 가지로 많이 못 드리고 있으니까. (개그의 소재가 되는 건) 제가 감사할 일이죠.”
작가에게 “매일 출연하게 해 주세요”라며 농담을 섞어 부탁한 나 의원은 전씨에게 명함을 건넸다. “아예 핫라인 번호를 드려야겠다. 필요할 때 전화주세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