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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성격 똑 부러지지 않아요 털털한 너경원으로 해주세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90호 10면

지난 27일 오후 8시20분이 조금 넘은 시간. 나경원 최고위원이 라디오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짝퉁’ 정치인들이 등장하는 ‘대충토론’ 코너가 막 시작하고 ‘너경원’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너경원’ 만난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은 너경원입니다.”
또박또박한 말투로 개그우먼 전영미씨가 모사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자 나 의원이 말했다. “아휴, 떨려서 못 듣겠네.”
이때 스튜디오 안에서 최양락씨가 대사를 읊었다.
“참, 예쁘시네요… 예쁘단 얘기 많이 들으시죠?”
‘너경원’에게서 당연하다는 듯 답이 날아왔다. “지겹죠.”
살짝 긴장했던 나 의원이 터진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휴, 떨려서 못 듣겠네”
이어 등장한 MB와 ‘너경원’이 나눈 대화의 주제는 역시 대선을 상징하는 알까기였다.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나 의원이 3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된 후 한 언론이 “차세대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차차기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던 걸 보고 작가가 쓴 것이다. 함께 등장한 MB는 알까기를 해보라고 자꾸만 권하고 ‘너경원’은 “글쎄요. 전, 아직은…”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심상정 진보신당 전대표(위사진 왼쪽)와 나경원 한나라당 최고위원(아래 사진 오른쪽)이 각각 개그우먼 전영미씨와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 신인섭 기자

“그럼 언제? 차기 말고 차차기 어때요? 차차차기 할까?”(MB)
“아휴, 호호호” (너경원)
라디오 부스 밖의 나 의원도 ‘너경원’처럼 “호호호” 웃었다.
“너경원님 오늘 부담스러우셨나요. 밖에 진짜로 나경원 의원께서 방문해 주셨습니다”라고 최양락씨가 마무리하며 코너를 마쳤다.
나 의원이 나머지 생방송이 끝나기를 기다려 제작진과 만났다. ‘너경원’을 맡은 전영미씨와도 처음 대면했다.

▶전영미=“긴장을 많이 해서 평소보다 너무 안 비슷했어요.”

▶최양락=“(나 의원이) 수더분한 인상은 아니라 영미가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컸나 봐요.”

▶나경원=“저 원래 털털해요. 제가 너무 똑 부러진 이미지로 나오는데 제 표정이나 말투가 변함없는 건 아마 판사 할 때 훈련을 받아서 그런 거 같아요. 재판 때 판사가 고개를 조금만 움직여도 피고는 억장이 무너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무표정하고 절대 웃으면 안 된다는 게 습관이 들어선지… 옛날에 학교 다닐 때도 알고 보면 생각보다 털털하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앞으로 ‘너경원’도 털털하게 해 주세요.”

나 의원이 생각하는 나경원-너경원의 싱크로율(원본과 같은 정도)은 90% 이상이란다. 그는 “제가 말하는 습관을 다 알고 계시더라”며 감탄했다. ‘너경원’은 박근혜 전 대표 성대모사에 이어 전씨가 떠올린 여성 정치인 캐릭터다. 그가 “특징을 잡기가 쉬워 하루 만에 파악했다”는 나 의원의 말투와 습관 중엔 정작 본인은 의식하지 못했던 것도 있었다.

“기사 읽고 깜짝 놀랐잖아요. 여자들이 ‘~해요’라고 말하면 사석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릴까 봐 전 ‘~습니다’라는 어미를 쓰는데 그것도 알고 계시고. 말하는 중간에 ‘어, 어’ 많이 넣는 버릇이 있는 건 저도 몰랐어요. 전당대회 연설 준비할 때 보좌진이 말해 줘서야 알았는데, 그걸 딱 넣으시더라고요. 전문가는 전문가다 싶었어요.”
생방송을 내내 지켜본 나 의원은 방송에 나오는 다른 정치인의 성대모사에도 관심을 보였다. 이명박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표와 직접 대화하면서 알게 된 그들의 습관과 말투에 대해 제작진에 귀띔해 주기도 했다.

“박 전 대표님 목소리로 아까 ‘출뀨’라고 하셨는데, 한나라당 여성 의원 모임에서 농담을 들었을 땐 다르게 말씀하셨어요. ‘출껴’라고. 또 대통령은 목이 안 좋아서 가끔 헛기침을 한 번씩 하세요. 어떤 날은 좀 심하고, 어떤 날은 덜하지만 그런 특징이 있어요. 근데 배칠수씨도 정말 똑같이 하시네요. 제가 대통령께 한번 말씀 드려야겠어요.”

나 의원의 이어진 말에 제작진은 “이러다 대통령도 오시면 어떡하나”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다.

나 의원은 난생 처음 개그의 소재가 된 게 “영광”이라고 했다.

“정치인이 국민에게 기쁨을 드려야 하는데, 여러 가지로 많이 못 드리고 있으니까. (개그의 소재가 되는 건) 제가 감사할 일이죠.”

작가에게 “매일 출연하게 해 주세요”라며 농담을 섞어 부탁한 나 의원은 전씨에게 명함을 건넸다. “아예 핫라인 번호를 드려야겠다. 필요할 때 전화주세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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