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사나이 … 40년 배타는 동안 사랑하고 싸운 바다, 그리고 잠시 밟았던 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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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대양의 노래
올리비에 드 케르소종 지음
허지은 옮김, 문학세계사
240쪽, 1만1000원

세상 전부가 바다로 상상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발 딛고 선 땅만 벗어나면 ‘세계의 끝’인 바다로 나아가 거대한 괴물의 아가리 속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란 상상이, 청년들의 피를 끓어오르게 했다. 대양을 정복한 나라가 세계의 패권을 쥐던 때도 있었다. 진짜 사나이들의 시대, 위대한 발견의 시대가 끝나자 쇠락한 나라의 후예들은 조상들이 남긴 거대한 유적에 ‘빨판상어처럼 빌붙어’ 연명했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항해사 올리비에 드 케르소종. 인터넷 ‘정보의 바다’에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 진정한 삶이 펄떡이는 ‘미지의 바다’로 나가볼 것을 권한다. [문학세계사 제공]

 다시 세상 전부가 바다로 치환되는 시절이 왔다. 신생아 티를 갓 벗은 어린아이들부터 시대에 뒤떨어지고 싶지 않은 어른들까지 작은 모니터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이른바 ‘정보의 바다’ 말이다. 엄마들은 인터넷에서 답을 찾는 ‘집 안의 영재’를 자랑스러워한다. 하나 걱정이다. 이 세계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기도 전에 다른 세계(가상현실)의 신민으로 뺏겨버리는 건 아닐까.

 프랑스의 항해사 올리비에 드 케르소종(65)은 바로 이 지점에서 책을 썼다. 『대양의 노래』는 40여 년의 바다 생활을 정리한 회고록이다. ‘구글’을 발명해 세계를 집안으로 끌어들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를 배에 태웠던 경험이 책을 쓴 계기가 됐다. 브린과 페이지가 세계를 착착 접어 안방까지 배달해주는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살아 있는 것들의 냄새를 맡고 만지고 느끼는 데 평생을 ‘탕진한’ 셈이었다. 정보화가 가져온 세계의 끝에서 그는 사랑하고 투쟁했던 바다들, 잠시 밟았던 대지들, 마음을 주었던 섬들이 사라지고 모든 추억이 화석이 돼버리는 낭떠러지에 다다른 것이다.

 케르소종은 세계대전 시기에 태어나 유·소년기를 전쟁의 폐허 속에 보냈다. 모두가 전쟁에 대한 상처를 보듬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 시절 교사들은 역사와 안정과 ‘결정된 세상’에 대해 가르쳤지만, 그의 심장은 결정되지 않은 세상으로 나가라고 명령했다. 그는 바다에 길을 물었다.

 지독한 인도양, 거대한 태평양, 변화무쌍한 대서양을 누비고 ‘늙지 않은 첫사랑’ 같은 폴리네시아 사람들 속으로 스며드는 동안, 바다는 그에게 이름을 가져다 줬다. 세계일주 신기록을 세웠고, 신문에 사진이 실렸으며, ‘쥘 베른 트로피’를 두 번이나 받았다. 하나 빈 배에서 혼자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일이 가장 행복했다. 그는 “고통이 팔할인 바다의 절대고독 속에서 매 순간 삶의 의미를 찾았다”고 고백한다. 바다는 사내에게 시 쓰는 법도 가르쳐줬던 모양이다. 멋부리지 않은 문체에서 통찰이 엿보인다. 이 남자, 진짜 삶을 살았다.

이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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