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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K는 어디에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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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허각’이 대세입니다. ‘슈퍼스타K’란 프로그램을 한 번도 못 본 저도 그 이름을 알 정도니까요. 중졸 학력의 환풍기 수리공이 잘생기고 배경 좋은 엄친아를 물리치고 서바이벌 오디션의 최종 승자가 되는 한 편의 인생역전 드라마였다지요.

 이 정도만 알아도 어떤 대화에서건 중간은 가는데(‘허공’까지는 몰랐다가 위기를 겪은 적은 있습니다만), 우리의 바쁘신 총리는 허각도 모르고 존박도 몰랐다가 취임 인사차 조계종 총무원을 찾은 자리에서 얼쯤하셨다지요.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취임사에서 공정한 사회를 강조했는데 혹시 허각을 아느냐”고 물었다는 겁니다. 자승 스님의 말씀인즉슨, “뒷배경도 없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오로지 성실함과 탁월한 노래 실력으로 우승하는 게 공정한 사회를 이루는 대표적 사례”라는 거였지요.

 왜 아니겠습니까. 막상막하인 심사위원들의 평가 속에서 시청자 투표가 허각 쪽으로 기울었던 것도, 특권층의 독식 행태가 도마에 올랐던 현실에서 이 사회가 좀 더 공정해지기를 바라는 열망이 녹아 있었던 까닭일 겁니다. 상품성이 더 있다는 존박은 다른 걸로 보상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약자가 승리하는 게 꼭 공정한 사회는 아닙니다. 감동은 있을지 몰라도 약자가 늘 승리한다면 그것만큼 불공정한 사회도 없겠지요. 중요한 건 실력 있고 노력하는 약자가 ‘빽’ 없고 돈 없다고 무시되고 기회마저 얻지 못하는 사회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요즘 많은 사람이 그런 공정한 사회를 강조하고 있으니 저는 앞에다 방점을 찍으렵니다. 실력 있고 노력하는 약자 말입니다. 아무리 공정한 사회더라도 노력해서 실력을 키우지 못하면 끝내 약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지요.

 노력도 하지 않고 스스로 약자로 규정짓는 건 약하다 못해 어리석습니다. 약자는 운명이 아닙니다. 옛날 얘기 하나 들려드리지요. 중국 명나라 때 원황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원병으로 참전해 공을 세우기도 한 인물이지요. 그가 10대 때 한 도인을 만납니다. 도인은 원황의 일생에 대해 예언을 해줍니다. 벼슬을 얻기는 하나 제한된 지위에 머물 것이며, 53세에 죽고 아들이 없을 것이라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20년간 그 예언이 맞아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원황이 녹봉으로 받는 쌀의 양까지 맞힙니다. 원황은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지요.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게 없을 테니까요. 그가 되는 대로 방종한 삶을 살고 있을 때 고승인 운곡선사를 만납니다. 선사는 유불선(儒佛仙) 3교의 진리를 들어 원황을 깨우쳐주지요. “모든 복은 마음을 떠나지 않으니 마음을 좇아 찾으면 감응해서 통하지 않음이 없다”는 게 육조단경(六祖檀經)의 가르침입니다. “하늘이 내린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인간이 스스로 부른 재앙은 회복할 수 없다”고 서경(書經)은 말하지요. 또한 도교의 공과격(功過格)은 날마다 행한 잘잘못을 기록하고 따져봄으로써 과오를 범하지 않고 선행을 쌓아가도록 이끕니다.

 “범부(凡夫)만이 운명에 속박될 뿐”이라는 운곡선사의 말에 크게 깨달은 원황은 다시 노력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3등 하리라는 도인의 예언과 달리 장원을 하고, 일흔이 넘도록 장수하며 아들도 낳았습니다. 운명을 뛰어넘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운명이 바뀐 것이지요. 그때 원황은 호를 “범상함을 끝내겠다”는 뜻으로 요범(了凡)이라 바꿨습니다. 이를테면 원황의 ‘탈(脫) 약자 선언’인 셈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약자는 운명이 아닙니다. 마음먹기에 달린 겁니다.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운명이 되는 겁니다. 운명 그 따위 것 발로 차버리세요. 개에게나 줘버리세요. 그리고 일어서세요. 노래에만 길이 있는 게 아닙니다. 슈퍼스타K는 어느 분야, 어떤 종목에도 다 있습니다. 『장자(莊子)』에 보면 “칼날을 놀려도 여지가 있고(遊刃餘地), 도끼를 움직이니 바람이 인다(運斤成風)”는 말이 있습니다. 뛰어난 요리사는 소의 뼈와 살 사이 좁은 곳에서도 칼날을 춤추듯 움직일 수 있고, 뛰어난 조각가는 도끼를 휘둘러 사람 콧등에 묻은 석고에 조각을 할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런 경지에 오르도록 노력하세요. 그것이 무엇이든 나만의 분야에서 슈퍼스타K가 되도록 자신을 담금질하세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뒤처지지 마세요. 우리 모두의 수퍼스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지름길을 가르쳐 줍니다 “노력을 다하라. 숙명적 노력을.”

중앙일보 j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