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갑 항운노조' 부산 항운노조 왜 영향력 셀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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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항운노조 전 간부 등이 지난 9일 노조의 채용비리 등을 폭로하는 양심선언(본지 3월 10일자 10면)을 하면서 항운노조의 실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항운노조는 부산지역 경제의 17%(연간 매출 14조원)를 차지하는 항만산업 근로자의 채용권을 독점하고 있어 그 힘이 엄청나다. 수출입 물동량을 배에 싣거나 내리는 작업을 하는 항운노조가 하역작업을 거부하면 부산항이 마비되고 부산 경제는 물론 국가 경제까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너가 있는 일반 회사의 노조와 달리 항운노조의 사용자는 하역회사와 운송회사, 보세창고업체 등으로 다양해 결집력이 낮다. 반면 노조는 채용과 인사권을 장악, 사실상 사용자 위에 군림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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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강한 힘 행사=노조는 이 같은 힘을 배경으로 지역사회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이들은 자신의 이익이 침해받을 기미가 보이면 '작업 거부'를 내세워 강력하게 대응, 목적을 달성해 왔다. 부두 현대화 등으로 일감이 감소되면 '노임 손실 보상'을 요구, 엄청난 보상금을 받기도 했다.

노조는 1978년부터 2002년까지 여섯 차례에 걸쳐 컨테이너 전용 터미널 개장과 관련해 터미널 운영회사로부터 259억원의 보상금을 챙겼다. 10일 부산항운노조의 비리를 폭로한 노조 전 간부들은 이 보상금의 일부 사용처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사용자인 터미널 운영사들은 처음엔 "보상할 이유가 없다"고 버티다가 '파업 불사'를 내세우는 노조에 결국 굴복했다.

노조 집행부의 힘도 막강하다. 조합원은 노조 가입 때부터 채용 이후까지 사실상 자신들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노조위원장 등 노조 간부들의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베일에 갇힌 비리=집행부의 알력도 심심찮게 불거져 나왔다. 이번에 양심선언을 한 전 간부들도 현 집행부와 불편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2일 중앙부두 내 항운노조 연락사무소에서 발생한 조합원 이모(39)씨의 분신 사건도 작업 배치 불만 때문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그러나 구조적인 비리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취업 장사 등에 대한 고발이 잇따랐지만 대부분 무혐의 처리되거나 '개인 비리'로 결론나기 일쑤였다. 검찰이 '토착 비리' 척결 의지를 보였을 때마다 항운노조 간부들이 수사 대상이 됐지만 기대했던 결과가 나온 적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정치권과 검찰이 항운노조를 봐주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부산=강진권.정용백.김관종 기자

*** 검찰 "노조원 입 안 열어 조폭수사 보다 어렵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항운노조의 취업 비리 사건에 대해 지난 1년간 수사를 했으나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항운노조 취업 비리의 경우 돈이 모두 현금으로 오가는데다 돈을 주고 취업이 된 조합원들은 돈을 줬다고 입을 열지 않기 때문에 수사가 어렵다"고 털어놨다.

비밀을 지켜주겠다고 해도 입을 열지 않고 도리어 "내 가족의 생계가 딸린 문제다. 제발 살려달라"며 애원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노조 집행부와 현장 근로자들이 똘똘 뭉쳐 수사에 대비하고 있어 항운노조 수사는 웬만한 조직폭력 수사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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