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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35개 농가, 이달 말 일제히 밀 파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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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의 호두과자 업소는 80곳이 넘는다. 그러나 고속도로 등 전국에 호두과자 파는 곳은 셀 수 없이 많다. 더이상 호두과자를 천안만의 명물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시절이다. 천안호두과자가 차별화를 시도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최근 천안의 호두과자 업소 몇 곳이 수입밀·외국산 호두 원료 대신 우리밀, 천안 광덕호두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 호두과자 명성 살리기에 나섰다. 그런데 우리밀 구하기가 쉽지 않다. 천호당(사진) 김진평 대표는 “호두는 국내 첫 재배지인 천안 광덕산 수확품을 사용하지만 우리나라 밀은 천안에서 구하기 힘들어 전남 구례에서 가져오고 있다”며 “천안에서 밀이 대량 생산된다면 천안호두과자란 이름에 걸맞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에서 호두과자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밀가루량은 연 850t정도다. 이를 국내산 밀가루로 대기 위해 천안시가 발 벗고 나섰다. 김영복 천안농업기술센터 식량작물팀장은 “22일부터 천안시 35개 농가가 우리밀을 파종하고 있다”며 “올해 총 재배면적은 90ha로 내년 6월이면 약 400t의 밀(원맥)이 천안에서 생산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젠 천안도 이모작시대 열렸다

천안시농업기술센터 김영복 팀장이 청당동의 오종수씨 논에서 ‘천안우리밀’ 이종민 대표와 함께 밀 종자를 살펴 보고 있다. (오른쪽부터) [조영회 기자]

오종수(44·천안 청당동)씨는 이달 청당동 및 풍세면 3ha에 밀을 파종했다. 지난 22일 오씨를 청당동 논의 밀 파종 현장에서 만났다. 이 자리에 영농조합 ‘천안우리밀’ 이종민 대표와 김 팀장이 함께 했다. 이준목(47·천안 목천읍)씨는 지난해 밀을 재배하다 낭패를 봤다. 이씨는 “밀 재생기에 비가 많이 내렸는데 배수로를 미처 내지 못해 수확량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천안 7개 농가가 22ha에 밀을 심었는데 예상 수확량의 40% 수준에 못 미치는 작황 부진을 겪었다. 올해는 적기 배수구 정비, 겨울 깜부기병 예방을 위한 밀 종자 소독 등 철저한 준비를 했다.

 천안에서 이모작이 가능해진 것 3년 전이다. 사료용 청보리를 심어 성공했다. 한반도 연평균기온이 높아지면서 천안을 포함한 중부지방도 농작물 ‘경작지도’가 바뀐 것이다. 남부지역에서 재배되던 겉보리(식용)·청보리가 천안에서도 안정적으로 수확되고 있다.

 이 같은 이유로 김 팀장은 천안의 우리밀 재배 이모작을 자신한다. 그는 현재 안전한 이모작 벼 재배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10월 말 논에 밀을 파종하고 이듬해 6월 수확하게 되면 모심기가 늦어져 벼농사에 지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천안시에선 활착(뿌리 내림)에 필요한 기간을 5일 정도 줄일 수 있는 포트묘를 심도록 했다. 늦은 모내기를 위해선 대당 6000만원이나 하는 포트묘 이앙기가 필요하다. 천안시농업기술센터는 2대를 구입해 농민들에게 빌려주고 있다.

 올해 우리밀 파종 면적 90ha 중 논은 25ha다. 농민과 농업기술센터는 밀·벼 이모작을 성공시키위해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나머지 65ha는 목초·콩·팥 등을 심던 밭이라 특별한 문제가 없다.

다른 지역 우리밀보다 싸게 공급

현재는 수확한 밀을 건조하고 저장할 공간이 천안에 없다. 제분시설도 없다. 시는 밀 건조는 각 농가에서 개별적으로 시행하고 집하(저장)시설은 내년 상반기 국비 등으로 지어 지원할 계획이다. ha당 4.5t 정도의 밀 수확이 예상돼 총 수확량을 400t으로 잡고 있다. 이중 200t은 가까운 아산 둔포의 제분시설을 이용해 밀가루를 생산해 천안의 호두과자 업소에 공급하고, 나머지는 광주우리밀농협에서 수매하도록 했다.

 가격은 우리밀이 2.4배 비싼 편이다. 20kg기준 수입밀은 1만7000원, 우리밀(구례) 값은 4만1000원이다. 내년 천안에서 생산한 밀은 3만6000원 정도에 공급할 수 있다.

 김 팀장은 “유통비 절감으로 우리밀 가격을 1만원을 줄일 수 있는데 그 혜택의 절반은 농민들에게, 절반은 밀가루 구입 업소에 준다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천안호두과자, 모두 우리밀로 만들자

천안의 호두과자 업소(80여 곳)들이 사용하는 밀가루량은 연간 850t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한 업소당 평균 밀가루 10t을 소비하는 셈이다. 현재 우리밀을 사용하는 업소는 ‘온 천안광덕호도과자’ ‘천호당’ ‘호선당’ 등 여섯 곳이다. 밀가루는 구례우리밀조합과 CJ제일제당을 통해 구입하고 있다.

 내년엔 우선 천안서 재배한 원맥 200t(밀가루 140t, 제분율 70% 기준)이 천안의 호두과자 업소에 공급된다. 천안시는 천안국제웰빙식품엑스포가 열리는 2013년까지 밀 재배 면적을 늘려갈 생각이다. 천안 우리밀 공급을 호두과자 외에 칼국수·자장면·제빵 업소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시는 향후 천안을 ‘우리밀 도시’로 만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있다. “천안에 가면 수입밀이 아닌 우리밀로 만든 웰빙 밀가루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인식이 전국으로 퍼질 때까지 농민·천안시·요식업소들이 힘을 합쳐야 가능한 일이다.

글=조한필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우리밀=1984년 정부의 밀 수매 중단으로 1980년 9만t 생산되던 밀이 85년 1만t, 90년 900t으로 급격히 줄었다. 그러던 우리밀이 2000년대 들어 웰빙바람을 타고 서서히 늘어나 2006년 6000t, 2009년 2만t, 올해 3만t이 생산됐다. 밀 소비량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 1인당 밀 소비량은 35kg으로 쌀 소비량(74kg)의 절반에 육박한다. 지난해 우리나라 총 밀 소비량은 190여 만t인데 우리밀 비율은 겨우 1%다. 농수산식품부는 우리밀 생산을 장려, 2017년 10%대까지 끌어 올릴 계획이다.



영농조합 ‘천안우리밀’ 이종민 대표

“지역서 나온 밀·호두·팥으로 진짜 천안호두과자를”

이종민(51) ‘천안우리밀’대표는 올해 우리 밀을 청당동 및 광덕면 3만3000㎡(1만평) 논에 파종했다. “지난해 파종하자마자 천안에 예상치 못한 비가 많이 내렸는데 배수로 작업도 못한 상태라 파종된 밀이 얼어 수확량이 크게 줄었다.”

 지난해 ‘실패’를 거울삼아 올해 준비를 철저히 했다. 벼 수확을 일찍하고 볏짚도 일찍 수거했다. 적기(適期)에 밀을 파종하기 위해서다. 다양한 밀 종자를 심어 천안에 맞는 품종을 가려 낼 생각이다. 농업기술센터 도움으로 ‘금강밀’(우리나라 재배 품종 80%)외에 ‘조경밀’(제빵용) ‘백중밀’(제과용)을 심었다.

 그는 “조경밀·백중밀의 천안 재배 성공여부에 농촌진흥청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며 “새품종 재배를 성공시켜 천안의 많은 농가가 우리밀 재배에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가 우연한 기회로 우리밀 전도사가 됐다 . “2008년 11월 천안농업경영인회 주축으로 쌀수매 관련 집회를 하러 버스 타고 서울로 올라가던 중 ‘매해 이렇게 수매값 올려달라, 수매 많이 해달라 집회만 할 것인가. 쌀에 목 매고 사는 우리 처지가 가련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이 때 이 대표를 중심으로 농가 수익증대를 위해 이모작을 생각했다. 몇 농가가 뭉쳐 지난해 3월 영농조합 ‘천안우리밀’을 만들었다. 우선 구례농협에서 밀가루를 구입해 호두과자를 만들었다. 광덕산 호두를 넣고 앙금은 병천 아우내 농협에서 구입한 팥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가을 천안웰빙식품엑스포 행사장에서 판매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다. 올해 천안서 첫 수확한 우리밀을 광주광역시에서 제분해 사용하고 있다. 밀가루 반죽법도 ‘고수’에게 전수 받아 호두과자 맛을 한층 좋게 했다. 이 대표는 “천안서 우리밀이 대량 생산되면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천안호두, 천안밀가루, 천안 팥이 들어간 ‘진짜 천안호두과자’가 천안 곳곳에서 판매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농조합이 만드는 ‘온 천안광덕호두과자’(사진)는 별도 매장이 없어 전화주문을 받아 판매한다. ‘온’은 온전히 우리 작물로 만들었다는 뜻. ▶문의=041-621-7741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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