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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본말 전도된 행정수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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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제 심대평 충남도지사가 자신의 정치적 요람이자 성장의 기반이었던 자민련을 탈당하였다.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는 일에 전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자민련으로서는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게 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염홍철 대전시장도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하였다. 탈당의 취지는 대강 심대평 지사와 비슷했다. 둘 사이에 다른 것이 있다면, 아직도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의 출마기회를 한 번 더 가진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의 신당 창당에 대한 견해 정도일까.

돌이켜 보면 이 나라 정가(政街)는 벌써 3년째 수도 이전을 두고 뜨거운 공방을 되풀이해 왔다. 그런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인지, 논의는 갈수록 본질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듯하다. 수도 이전 그 자체가 아니라 지역감정과 관련된 정치적 고려가 우선되어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감정은 틀림없이 수도 이전 논의와 연관을 맺게 되기는 하나, 그 논의의 본질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선거 공약이 되면서 처음부터 수도 이전 논의는 지역감정의 눈치를 살피는 선거전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수도 이전이 옳으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문제로 촉발된 지역감정이 투표에 미치는 득실의 문제로 더 자주 논의되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고비인 지난해 초의 행정수도 관련 임시조치법 통과 때도 그랬다. 여당은 국토 균형 발전이란 명분을 내세웠지만, 왠지 대통령 선거에서 재미 본 공약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번 더 활용하기 위해 서두르는 듯 보였다. 야당도 수도 이전의 대의에 찬동한다기보다는, 곧 있을 선거를 의식한 충청권 출신 소속 의원들의 압력에 못 이겨 어물쩍 국회를 통과시켜주고 만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 본질을 제대로 짚고 이루어진 수도 이전 논의는 지난해 여름 헌법재판소의 판결 때가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그때 적용된 법리가 반드시 옳은지는 알 수 없으나, 판결 대상은 오직 수도 이전 그 자체의 합헌성(合憲性)이었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문은 수도가 어떤 지역으로 이전되는가, 그리고 그 이전이 여타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어떠한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려도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헌재 판결 이후의 수도 이전 논의는 다시 지역감정을 가장 큰 변수로 삼는 형식논리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여당도 야당도 수도 이전의 대의보다는 충청권의 지역감정을 눈치 보기에 바빴다. 여당은 양두구육(羊頭狗肉) 같은 행정도시 건설촉진법으로 성난 민심을 달래고, 야당도 충청권에서 행여나 몇 표라도 건질까 하여 다시 한번 그 법안을 통과시켜 주었다.

그 법안의 국회 통과를 두고 분당 사태까지 갈 뻔했던 한나라당의 내분에서도 수도 이전 시비는 여전히 본질에서 멀리 벗어난 것이었다. 충청권 몇 십만 표를 얻고자 수도권 몇 백만 표를 잃었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 해도, 제1 야당의 중진 의원들이 공공연히 드러내 놓고 할 말은 아니다. 자칫하면 지역감정으로 잃은 것을 또 다른 지역감정으로 보상받으려는 졸렬한 논의로 들릴까 걱정된다.

수도 이전 또는 행정도시 건설 논의의 본질은 수도기능, 특히 행정기관의 분산에 따른 국토 균형 발전론과 거기에 대한 반론이 될 것이다. 곧 행정기관의 지역적 집중과 통합에 따른 행정의 효율성이나 이미 수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권역별 시너지 효과의 상실, 과다한 이전 비용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진행을 보면 특정지역의 이해와 얽힌 지엽적인 논의에만 매달려 이제는 아예 본말(本末)이 전도(顚倒)돼 버린 느낌이다.

거기다가 어제 탈당한 충청권의 두 광역자치단체장은 그와 같은 본말의 전도를 더욱 극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충청권이 행정수도 후보지가 된 것은 수도 이전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대안이지, 충청권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기 위해 수도 이전 논의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충청권에 행정수도가 들어서는 것은 어떤 논의의 파생적인 결과이지, 그 자체가 정치적 목적이 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 도백과 광역시장은 충청도에 행정수도를 유치하기 위해 소속 정당에서 탈퇴했다. 그뿐 아니라 그 목적으로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공언까지 해 사람들을 아연하게 했다. 아무리 제멋대로 세워지는 게 요새 정당이라지만 글쎄, 자기 지역에 행정수도를 끌어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정강정책으로 내세우는 정당도 정당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이문열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