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인기작곡가 유승엽, '오카리나' 전도사로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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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기적이 우네 나를 두고 멀리 간다네~ 이젠 잊어야 하네 잊지 못 할 사랑이지만~"

요즘 세대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 노래. 70년대 말 국내에 디스코 열풍을 몰고오며 풍미했던 추억의 가요 이은하의 ‘밤차’다. 이 곡의 히트와 함께 이은하는 스타반열에 올랐고 그녀의 인기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그 중, 그녀만큼이나 주목을 받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 곡의 작곡가 유승엽(63)씨다.

75년 ‘슬픈 노래는 싫어요’로 가수데뷔를 한 유씨는 78년 이은하의 ‘밤차’와 ‘겨울장미’를 통해 작곡가로 진로를 틀었고 뒤이어 진미령의 ‘하얀민들레’, 심수봉의 ‘당신은 누구시길래’ 등을 이를 히트시키며 70~80년대 인기작곡가로 자리잡았다.

그는 요즘 새로운 음악에 빠져 살고 있다. 태생인 대중음악계를 떠나 제2의 음악인생을 보내고 있는 유씨를 지난 22일 경기도 군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유씨는 낯선 악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작은 새를 연상케하는 이 악기는 어린 시절 부르던 피리처럼 구멍이 여러개 뚫려 있었다. 연주하는 유씨의 모습을 보니 부는 방법도 피리와 크게 다를게 없다. 하지만 피리보다 훨씬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악기의 이름은 '오카리나'. 날아다니는 풀벌레들을 모여들게 할 정도의 신비로운 소리를 낸다는 이 악기는 흙, 물, 불, 바람으로만 완성되어 자연과 가장 닮은 악기라고 불린다. 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널리 보급되지 않아 생소한 사람이 많다.

유씨는 지난 91년 캐나다 여행 중 우연히 들은 오카리나 소리에 반해 '오카리나야말로 인류가 보존해야 할 마지막 악기'라고 마음먹었다. 그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건드리지 않고 오로지 흙 한 줌으로 만들어진 악기다.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듬해인 92년 오카리나 공부를 위해 캐나다로 건너갔다. 이 후 97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오카리나 음반인 <혜초>를 발표하며 오카리나 연주자로 활동했다. 지금까지 다섯장의 앨범을 발표한 그는 이제는 작곡가로서 보다 오카리나 연주자로 더욱 잘 알려져있다.

지난 6월 그는 자신의 고향인 경기도 군포에 '한국 오카리나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오카리나 전수에 앞장서기 위해 설립한 아카데미는 일반인들도 오카리나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강의를 듣기 위해 매주 지방에서 올라오는 수강생도 있을 정도다.

유씨의 오카리나 사랑은 연주에만 그치지 않는다. 2000년부터는 직접 오카리나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는 악기 제작을 위해 필요한 모든 과정을 스스로 터득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는 마음에 드는 악기를 탄생시켰다. 꼭 2년만이었다.

유씨는 자신이 만든 악기를 국내외 유명인사들에게 선물해 주기도 했다. 선물을 받은 법정 스님과 오바마 대통령은 감사의 뜻으로 친필편지까지 보내왔다.

그는 "유명인사에게 오카리나를 선물한 것은 파급력을 지닌 그들이 이 악기의 매력을 느끼고 널리 퍼뜨려주길 바라는 마음이었죠"라고 말했다.

유씨에게 대중음악계로의 복귀 의사를 물었다. 그는 "떠난게 아니라 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오카리나의 매력에 푹 빠져 다른 음악을 할 겨를이 없다는 그는 "대중음악도 오카리나도 모두 음악이란 공통분모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냐"며 "단지 지금은 이 시대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다운 악기인 오카리나를 널리 알리고 싶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중앙일보 디지털 뉴스룸=글 유혜은 기자, 영상 손진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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