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여성 노동자 돕는 '왕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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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 김애란(右)씨가 우즈베키스탄 출신 여성 노동자와 체불 임금 문제를 상담하고 있다.

3년간 한국에서 일하다 지난 2일 베트남으로 떠난 샤샤(36.여). 비자만료 시기가 다가오는데 밀린 임금 1000만원을 받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던 그는 '언니'의 도움으로 일부를 돌려받아 가족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사장님이 돈 없어 못 준다 했는데 우리 언니가 말 잘해서 900만원 받았어요. 참 좋은 언니예요." 샤샤는 한국말이 서툴러 고마운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없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샤샤가 '언니'라 부른 사람은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김애란(46)씨다. 두 딸을 둔 평범한 주부인 김씨는 6년 전 성공회에서 세운 외국인 노동자 상담소의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시작했다. "살림만 해서 법이니 뭐니 복잡한 건 잘 몰라요. 그저 이웃에서 자주 부딪히는 외국인 여성들이 동생이나 딸처럼 느껴져 힘 닿는 대로 도운 것 뿐이죠."

하지만 그가 준 도움은 결코 작지 않다. 법적 절차를 통하면 두세 달씩 걸리는 체불 임금 문제를 훨씬 빨리 처리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들 아줌마가 무슨 힘이 있어 돈을 받아내느냐고 의아해하더라고요. 그런데 '사장님쪽 어려운 형편도 이해하니 전부가 안 되면 일부라도 먼저 달라'며 편하게 접근하면 대부분 마음을 열어요."

이런 식으로 여러 명의 임금을 받아주다 보니 고양시 일대의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 김씨는 '해결사'로 통한다. 돈을 제때 못 받은 경우는 물론 공항에 갈 차편이 없어도, 갓난아기에게 먹일 음식이 모자라도, 몸이 아파도 다들 그를 찾는다.

김씨는 그간 도왔던 이들 중 지난해 여름 출산한 하바(25.방글라데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산모가 영양 부족이라 아이도 몸이 성치 못해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거든요. 슬픔을 느낄 참도 없이 병원비 걱정이 태산이기에 여기저기서 후원금을 거둬줬지요."

하바의 경우에서 보듯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에게 가장 힘든 문제는 출산과 양육이다. 김씨는 "장소만 마련되면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이들을 위한 탁아방을 꾸려가고 싶다"고 했다.

글.사진=신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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