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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 중국어’로 중국 헌법 전문가들에게 45분 특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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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동흡(59·사진) 헌법재판소 재판관 이 독학으로 배운 중국어 실력으로 중국의 헌법 전문가들 앞에서 45분간 중국어로 특강을 했다. 주제는’한국 민주주의 발전과 헌법재판소의 공헌’이었다. 이어 100분간 계속된 질의응답은 한국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면서 진행했다.

 25일 오후 중국인민대학 법학원 601호실에서 진행된 특강에는 베이징대·정법대·국가행정학원 등에 소속된 중국의 내로라하는 헌법 전문가들과 인민대 법학원의 교수 및 학생 100여 명이 모였다. 한다위안(韓大元) 인민대 법학원장의 소개를 받은 이 재판관이 인사말부터 중국어로 하자 장내는 잠시 술렁거렸다. 한국의 고위 인사가 중국어로 특강을 소화한 전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날 이 재판관은 헌재의 역사와 기능, 헌재와 대법원과의 관계, 헌재 결정의 기속력(법원이나 행정기관이 자기가 한 재판이나 처분에 스스로 구속되어 자유롭게 취소·변경할 수 없는 효력) 등을 중국어로 찬찬히 설명했다. 수도 이전 위헌 판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재판, 동성동본 결혼 금지 위헌 판결, 간통죄와 사형제 논란 등 헌재의 판례까지 소개했다. 질의응답 시간은 주최 측이 시간 관계상 질문을 더 이상 받지 못한다고 선언할 때까지 100분간 계속될 만큼 분위기가 뜨거웠다.

 베이징대 왕레이(王磊)교수는 “변호사만 헌재 재판관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이 재판관은 “교수·외교관 등 전문가를 참여시켜 재판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법이 개정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특강을 들은 인민대 학생 선린(沈琳)은 “성숙한 헌법기구인 헌재가 서구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 헌재가 사회 민주화에도 기여한 사실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 재판관은 “몇 년 전 상하이(上海)를 여행하면서 중국어를 배워야 겠다고 결심해 6년간 독학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3년 전 헌재에 ‘중국 공부 모임’을 출범하기도 했다. 일본어도 유창한 이 재판관은 내년에 출범하는 ‘아시아 헌법재판 연합’ 준비위원장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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