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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참여한 영웅 만들기, 지상파 시청률의 2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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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호 04면

‘슈퍼스타K 2’ 톱11.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존박·김그림·앤드류 넬슨·김지수·강승윤·이보람·장재인·김은비·허각·김소정·박보람. 사진=엠넷 제공

23일 새벽 케이블 채널 엠넷(Mnet)과 KM TV를 통해 동시 생중계된 ‘슈퍼스타K 2’ 최종회의 합산 시청률은 18.1%(AGB닐슨미디어리서치). 8일(12회) 방송에서 기록한 케이블 TV 최고기록 14.7%를 다시 뛰어넘었다. 지난해 시즌1의 최고 시청률(합산 8.683%)의 두 배 이상일 뿐 아니라 동 시간대 지상파 프로그램도 모두 두 배 격차로 눌렀다.
지난해 시즌1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긴 했지만 올해 이 정도 기록을 낼 거라고 예상됐던 것은 아니다. 근거가 되는 게 광고판매가다. ‘슈퍼스타K 2’는 케이블 프로그램으론 처음으로 단일 광고가 붙긴 했지만(통상적으로 케이블은 채널 전체에 대해 패키지 판매를 한다) 단가 기준 시청률은 8%였다. 즉 올해도 예년 수준을 유지하지 않겠느냐가 엠넷과 광고주 모두의 판단이었던 것이다.

케이블 방송의 새 장 개척한 슈퍼스타K 2의 힘

하지만 시즌2는 종전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1회부터 4.2%로 가뿐히 출발했다. ‘슈퍼위크’ 예선 중이던 9월 3일, 케이블 사상 처음으로 두 자릿수(엠넷·KM 합산 10.213%)를 기록했다. 매회 방송 때마다 동 시간대 지상파까지 통틀어 시청률 1위를 이어갔다.

신드롬은 문자투표 콜 수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는 첫 생방송 때 약 12만 콜, 최종회 기록은 20여만 콜이었다. 시즌2는 첫 생방송부터 43만 콜이었다. 평균 70만 콜 정도를 유지하다가 최종회에선 130만 콜을 넘겼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장점 흡수
‘슈퍼스타K’의 성공은 일차적으로 서바이벌 리얼리티 쇼 자체의 매력에 있다.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무명의 일반인이 갖은 미션과 도전 끝에 스타로 거듭나는 영웅 스토리다. 오디션 프로의 경우 세대·성별·계층을 뛰어넘는 노래라는 콘텐트 자체가 강점이다. 우승자를 직접 뽑는 ‘참여형 구조’가 시청자의 연대감을 강화시킨다. 심사위원의 독설을 즐기는 관음의 쾌감도 있다.

이렇게만 보면 ‘슈퍼스타K’가 미국 FOX TV의 ‘아메리칸 아이돌’을 따라 했다는 비아냥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원조로 꼽히는 ‘아메리칸 아이돌’은 영국에 ‘브리튼즈 갓 탤런트’ 등을 파생시키며 10시즌째 장수하고 있는 인기 프로다.

그러나 이 정도 유사점만으로 ‘슈퍼스타K’의 성공을 설명하기엔 부족하다. 그간 국내 지상파·케이블을 통틀어 숱하게 한국형 ‘아메리칸 아이돌’이 시도됐다가 반향 없이 사라진 것을 돌이키면 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 송창의 CJ미디어제작본부장은 “슈퍼스타K는 충분히 로컬화된 독창적인 서바이벌쇼”라고 평가했다. “오디션 포맷은 전 세계적으로 무수히 되풀이되고 재활용된다. ‘슈퍼스타K’가 놀라운 것은 엘리베이터 안까지 카메라를 설치해 참가자들의 실시간 심경 변화를 엿보게 한 치밀함이다.”

‘인간극장’ 보는 듯한 생생함
부연하자면 같은 리얼리티라도 ‘아메리칸 아이돌’이 롱테이크로 찍었다면, ‘슈퍼스타K’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리얼리티라는 것이다. 두 시간 가까운 방송의 절반 이상에서 참가자들의 소소한 일상을 몰래카메라처럼 보여준다. 덕분에 시청자는 김그림이 자신의 욕심으로 인해 조장이면서도 조를 이탈했고, 김보경은 부모 이혼 후에 어린 동생들의 가장 노릇을 해왔다는 걸 알게 됐다. 김은비는 훈남 존박에게 핑크빛 감정을 가지고 있고, 강승윤은 이런 김은비를 마음에 두고 있다. 선배 가수 이하늘이 “어차피 존박이 우승하게 돼 있다”고 할 때 허각은 익살스럽게 소주잔을 들이켠다. 참가자 간의 우정·질투·사랑·경쟁이 웬만한 드라마보다 ‘드라마틱’하다.

‘슈퍼스타K’가 이렇게 ‘현미경 리얼리티’를 중계하는 것은 왜일까. 리얼 엔터테인먼트 채널 QTV의 이문혁 프로듀서는 국내 리얼리티 쇼에 대해 이런 말을 한 바 있다. “우리 시청자들은 연예인 아니면 관심이 없다. 합창을 하건 레슬링을 하건 유명인이 해야 시청한다. 해외에선 자리 잡은 일반인 리얼리티 쇼가 국내에선 연예인의 ‘리얼 버라이어티’를 못 이기는 게 그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슈퍼스타K’를 총괄 연출해 온 김용범 책임PD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슈퍼스타K’가 노래 실력이 아니라 개인사가 주축이 된 인간극장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는 “한국에서 프로 가수가 아닌 일반인이 주목을 받으려면 내 가족 혹은 이웃인 양 친숙하게 느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출연자 간의 갈등을 굳이 편집하지 않은 것도 “미국 리얼리티쇼는 경쟁 구도를 강조하고 무대에서도 개성이 넘치지만 한국인은 튀는 걸 꺼리고 체면을 중시하기 때문에 스스로 말하지 않는 걸 끌어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연예기획사의 아이돌 육성방법 차용
달리 말해 ‘슈퍼스타K’의 성공은 이것이 ‘일반인 프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반인을 ‘반(半)연예인’화한 것, 그것이 히트 비결이다. 합숙훈련을 통한 몸 만들기 과정이나 스타일링을 지도받는 모습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점점 친숙도를 높였다. 분야별로 전담 코치 트레이너가 붙어 이들의 아마추어적인 면을 다듬어냈다. 덕분에 시청자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이들의 세련됨을 즐길 수 있었다. 아이돌 기획사의 육성전략을 고스란히 옮겨온 셈이다.

결승무대를 앞둔 17일 톱2의 깜짝 팬사인회가 열렸을 때, 영등포 타임스퀘어에는 3000명이 몰려 선물 공세를 퍼부었다. 이미 그들이 연예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뜻이다. ‘슈퍼스타K’는 프로그램 포맷을 통해 스타를 탄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모범이다.
 
음반시장서 돌풍 일으킬지 관심
‘슈퍼스타K 2’ 우승자가 실제 음반시장에서도 돌풍을 일으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가요관계자들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프로그램 때문에 잠깐 주목을 받을 뿐이지, 프로페셔널한 가수로서 자기 영역을 창출하는 것은 별개라는 얘기다. 실제로 지난해 우승자 서인국은 올해 미니 앨범을 냈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시즌2에서 장재인·김지수 등 실력파 뮤지션들이 활약하면서 통기타 판매가 늘고, 톱 11의 참가곡 음원이 화제가 됐다 해도 이로 인한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허각을 비롯한 출연자들은 음반 시장에서 제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출발선상에서 다시 신발끈을 매야 한다.
 
케이블프로가 ‘본방사수’ 대상으로
이번 ‘슈퍼스타K’에서 드러난 진정한 승자는 따로 있다. 프로그램을 제작·방송한 케이블 채널 엠넷(Mnet)이다. ‘슈퍼스타K’가 두 자릿수 시청률에 안착한 결과 엠넷의 브랜드가치는 확 올라갔다. 음악전문채널 이미지는 이미 확고해졌다. 재핑(zapping,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려보는 행위)이 아니라 ‘본방 사수’의 대상으로 격상했다. ‘슈퍼스타K’는 이제 케이블채널을 이끄는 ‘플래그십 마케팅(flagship marketing)’의 대표주자가 된 것이다. 플래그십이란 해군의 선단에서 깃발을 꽂아놓은 가장 중요한 배다. 이 배가 앞장서 가면서 나머지 선단을 이끈다. 방송에 적용하면 하나의 히트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의 인지도까지 견인하는 셈이다. ‘슈퍼스타K’라는 깃발을 펄럭이며 엠넷 채널이 순항하면 케이블 전체의 인지도도 높아질 것이다. 종합편성채널 도입 등으로 인해 미디어산업의 새판 짜기가 분주한 상황에서 ‘슈퍼스타K’의 ‘기적’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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