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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펄 끓어라, 스포츠 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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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라면은 양은냄비에 끓여야 제맛이 난다고 합니다. 인터넷의 '지식검색' 같은 곳을 뒤져 보면 '양은냄비는 열전도율이 높아 열이 빨리 오르고 빨리 식기 때문에 이것으로 라면을 끓이면 면발이 쫄깃하다'라는 설명이 나오죠. 즉 단시간에 조리된 라면이 맛있다는 것입니다.

냄비의 이미지가 긍정적인 경우는 라면을 끓일 때뿐인 것 같군요. 일본말 '나베'에 어원을 둔 냄비는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은 조리 도구라는 인상을 줍니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잊는 우리 국민성을 얘기할 때 종종 '냄비 근성'이라는 자조적인 말을 쓰죠. 한국인을 비하하는 표현 가운데 대표선수 격입니다.

하지만 메주를 띄우고 김칫독을 땅에 묻는 사람들,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 몇 그루를 심어 혼인할 때 가구를 짜 보냈다는 사람들을 '냄비'라는 표현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삶의 부엌을 살펴보지요. 부뚜막에는 시커먼 무쇠솥이 걸렸고 뚝배기와 사기대접이 놋그릇과 함께 찬장에 재워져 있습니다. 아궁이에서는 강한 불길이 사라진 뒤에도 밤새도록 아래윗목을 데우는 불씨가 재에 묻혀 숨을 쉽니다.

아무튼 냄비라는 표현은 부정적인 수사의 도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식의, 표현의 뒤집기를 통한 가치관의 역전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식은 물방울처럼 냄비에 맺힌 야유의 뉘앙스는 반응의 신속함.집중력, 그리고 재빠른 청산이라는 설명으로 대체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화끈하게 한 판 벌이고, 끝장을 낸 뒤엔 또 다른 관심사로 옮겨 가는 이 기질을 나쁘게만 볼 이유는 없습니다.

이 기질이 'IT강국 코리아'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한국축구의 역사를 새로 쓴 2002년 월드컵 4강의 기적도 사실은 '위대한 냄비'의 작품이었습니다. 세계 축구의 변방에 있는 줄만 알았던 우리가 그 붉은 냄비 속에 뛰어들어 '대~한민국!'을 외치며 월드컵 무대의 한복판에 서 있음을 깨닫고 희열했던 것입니다.

이제 냄비는 식었고 축구장의 관중석은 다시 비었습니다. 그러나 화산의 분화구를 닮은 스타디움은 언제든 다시 한번 시끌벅적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축구는 좀 부진했습니다. 그 부진은 어제 끓여 먹은 맛없는 라면이었을 뿐입니다. 오늘 먹을 라면은 어제보다 맛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싶습니다.

냄비는 새 물을 담고 불 위에 올라야 제구실을 합니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스포츠, 헤아릴 수 없이 다채로운 재료를 담은 수많은 2005년산 '코리아'표 냄비가 불 위에서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뜨거워도 좋습니다. 특히 스포츠 현장에서의 새로운 냄비물은 펄펄 끓어넘치기를 기대합니다. 스포츠의 현장이라면 축구장이든 야구장이든 농구장이든 배구장이든 상관없습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의 경기장이 거대한 냄비가 되어 부글부글 끓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에 한국과 한국인의 우수함을 알리는 또 다른 한마디 '스포츠 강국 코리아'. 그 자랑스러움은 바로 그 냄비 속에서 익습니다.

올해는 냄비가 펄펄 끓기를. 그리고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와 식어버린 냄비를 내려놓았을 때, 그때는 맑고 투명한 상식과 합리의 질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를. '마치(March)'라는 이름처럼 힘찬 봄의 발길을 느끼는 3월, 본격적인 실외 스포츠의 막이 오르는 이 계절에 띄우는 소망입니다.

허진석 스포츠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