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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버스전용차로 왜 손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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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흘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버스전용차로 택시 통행, 무엇이 쟁점인가’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릴 예정이었다. 한나라당 서민정책특위의 택시대책소위원회가 마련한 자리였다. 그러나 토론회는 시작조차 못하고 무산됐다. 택시·버스업계에서 300여 명이 몰려와 몸싸움과 삿대질을 벌였기 때문이다. 버스업계 사람들은 “우리에겐 알리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쉬쉬하며 토론회를 열려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버스전용차로의 택시 진입 허용은 택시업계의 오랜 희망사항이다. 업계의 아우성은 물론 정치권에도 전달됐을 것이다. 한나라당 서민정책특위가 지난달 10일 발표한 ‘서민지원 정책과제’에도 ‘버스전용차로 택시 이용방안’이 포함돼 있다. 관련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도 허태열·오제세 의원 등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토론회가 열릴 뻔했던 19일에는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승객을 태운 택시는 출퇴근 시간대에도 버스전용차로를 다닐 수 있고, 빈 택시도 출퇴근 시간만 아니면 전용차로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이 문제가 버스·택시 ‘업계’ 간 싸움이라면 누구도 편들 생각이 없다. 그러나 승객이자 시민 입장에 서면 편들 쪽이 분명해진다. 버스다. 나는 한나라당 서민정책특위가 무언가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다고 본다. 검사 출신인 홍준표 의원, 의사 출신인 신상진 의원이 평소 버스를 얼마나 타보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택시기사들의 열악한 보수·근로조건은 보기가 딱할 정도다. 택시회사에 다니는 가까운 친척에게 물어보니 “전용차로 진입을 당장 허용해야 한다”며 아주 단호했다. 그러나 택시업계의 고충은 유류세·총량제·재정지원 등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주어야지 버스전용차로를 훼손해 정치권이 손 안 대고 코 풀려고 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발의된 법안들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도 대체로 전용차로 진입 허용에 부정적이었다.

 대개 그렇듯 나도 버스·택시·승용차를 두루 이용한다. 급할 때 택시를 타고 가끔 승용차도 이용하지만, 출퇴근은 버스로 한다. 파주에서 서울의 회사 부근까지 버스 타는 시간만 1시간20분이니 하루에 3시간 가까이 버스 신세를 지는 셈이다. 그나마 전용차로로 빨라진 덕분이다. 신촌 연세대 앞길이 승용차로 꽉 막혀 있을 때 내가 탄 버스가 전용차로를 쌩~ 달릴 때는 쾌감마저 느껴진다. 그래서 승용차를 몰 때도 웬만하면 버스에 길을 양보한다. 내가 이용하는 노선의 버스는 운전석 빼고 41개 좌석이다. 출퇴근 시간에는 서 있는 사람들도 많다. 수송분담률이나 요금 측면에서 버스와 택시 중 어느 쪽이 더 ‘서민적’인가. ‘서민으로서의 택시기사’와 ‘택시업계’를 혼동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가장 잘한 일은 버스 준공영제·전용차로제 등 획기적인 교통체계 개혁이었다. 대선에서 이 후보가 승리한 뒤 진보·좌파들조차 “공허한 이념 논쟁 말고 버스전용차로제 같은 실질적인 대안을 갖고 싸웠어야 했다”며 후회했을 정도였다. 외국에서도 다투어 벤치마킹하고 있는 제도 아닌가. 경기도 주민인 나는 김문수 지사가 제일 잘한 일로도 수도권 통합환승요금할인제를 서슴지 않고 꼽는다. 2007년 이 제도 도입 후 3년 동안 경기도의 대중교통 이용률은 43.2%나 늘어났다. 이런 게 진짜 서민정책이다.

 버스에는 버스의 길이 있고 택시에는 택시의 길이 있다. 택시 대책은 다른 방법으로 세워야 한다. 솔직히 말해 감차(減車) 보상비 같은 막대한 돈이 엄두 나지 않자 버스 길을 엿보는 것은 아닌가. 택시 진입을 허용한 뒤엔 승용차 운전자들이 반발할 텐데, 그때 가서 “배기량 1000㏄ 미만 ‘서민용’ 경차도 버스전용차로에 들어와라”고 할 것인가. 나의 주장에는 아마도 주로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으로서의 이해관계가 깔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대한민국엔 아주 많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