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148> 배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8면

김장철을 앞두고 배추값이 안정세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포기당 1만5000원으로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으나 4000원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김장 걱정에 발만 동동 구르던 주부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됐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배추값이 비싸니 내 식탁엔 양배추김치를 올리라”고 했다 하죠? 양배추로도 김치를 담글 순 있지만 통통하게 속이 들어찬 가을배추로 담근 김장김치의 시원하고 칼칼한 맛을 대신할 순 없을 겁니다. 우리 식탁의 보물 1호 배추의 속살을 파헤쳐 봤습니다.

유길용 기자

1900년대 초부터 김치로 만들어

배추의 영어 이름이 중국 양배추(Chinese Cabbage)인 것에서 미루어 알 수 있듯 배추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7세기쯤 화북지방에서 주로 재배되다가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파됐다. 배추는 중국 남북조시대 이래 5대 채소로 꼽혔다. 중국에서는 “백 가지 채소가 배추만 못하다(百菜不如白菜)”는 말이 내려온다. 그만큼 배추는 예부터 귀한 채소로 여겨져 왔다.

정부와 농수산물유통공사 등이 이번에 중국에서 들여오는 배추는 산둥성에서 자란 품종이다. 산둥성은 중국 최대 채소 생산지로, 이곳에서 재배된 배추는 강원도 고랭지배추와 비슷해 우리 입맛에 적당하다. 정부는 우선 100t을 시범적으로 들여온 뒤 시장 반응을 보고 수입물량을 확대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기록에는 1236년 고려 고종 23년에 출판된 『향약구급방』에 배추가 처음 나온다. 초간본은 현재 전하지 않고 1417년 의흥현 현감 최자하가 갖고 있던 책을 인쇄해 간행한 중간본에 기록돼 있다. 문헌에는 ‘지황이 있으면 부추를 먹지 말고, 감초가 있으면 숭이(배추)를 먹지 말라’고 나와 있다. 화상을 입거나 생인손(손가락 끝에 종기가 나서 곪는 병)을 앓을 때 배추를 데쳐서 상처 부위에 붙였다고 한다. 옻독이 올라 가렵고 괴로울 때는 배추의 흰 줄기를 찧어 즙을 낸 다음 바르기도 했다. 반찬이 아닌 약용으로 재배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김치를 담글 때 쓰는 결구형 배추는 1770년쯤 중국 베이징 지방에서 들어왔다. 배추를 김치의 주재료로 사용한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인 1900년대 초다. 중국 산둥지방의 배추를 들여와 서울 왕십리에 심어 재배에 성공하면서부터다. 이전에는 무를 소금물에 절여 발효시킨 무짠지를 주로 먹었다.

 생육기간 55~90일, 기온 15~20도가 적당

김장용으로 소비되는 가을배추는 10월 말~11월 초께 수확을 한다. 김장용 가을배추는 한 해에 135만t 정도 소비된다. [중앙포토]

배추는 브라시카 라파의 재배종으로 장미군 양배추과에 속하는 두해살이 채소. 잎이 자라는 생장 초기에는 20도, 결구(겹겹이 속이 차는 것)되려면 15~16도가 적당하다. 결구기는 밤낮의 기온 차가 커야 속이 단단해진다.

배추는 재배기간에 따라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으로 나눈다. 생육기간이 55일 미만인 조생종에는 얼갈이배추, 서울배추가 있다. 얼갈이배추는 주로 물김치나 겉절이용으로 사용된다.

생육기간 65일짜리인 중생종은 조생미호배추, 전승배추, 고랭지여름배추, 조생가락배추 등의 종자가 있다. 이번에 생산량이 감소해 배추값 폭등의 원인이 된 품종이 고랭지배추다. 만생종은 생육기간이 70~75일로 미호70일배추, 삼진배추, 이상가락배추, 올림픽배추 등이 있다. 만생종 중 내병불암3호배추, 대형보관배추는 85~90일 정도 걸린다.

품종은 잎사귀가 안쪽으로 뭉치며 자라는 결구종(結球種)과 잎사귀가 펼쳐진 비(非)결구종, 그 중간인 반(半)결구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재배하는 것은 결구종으로 중국 청방배추와 일본 경방배추의 1대 잡종이 대부분이다. 1950년대 우장춘 박사가 우리 풍토에 맞게 교배에 성공한 원예 1, 2호가 시초다. 이후 100여 개 개량종이 생겼다. 이전에는 반결구종을 심었다. 개성배추는 한강 이북, 서울배추는 한강 이남에서 많이 심었다.

한 해 김장하는 데 135만t 사용

배추는 전국적으로 재배된다. 월동배추가 나오기 전인 8, 9월에 나오는 배추는 대부분 강원도에서 재배하는 고랭지 배추다. 경기도는 평택, 충남은 아산·당진, 전북은 고창·정읍·부안 등에서 배추를 많이 재배한다. 전남은 해남·진도·무안·나주 등에서, 경북은 안동, 경남은 거창이 배추산지로 유명하다.

수확시기는 품종이나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1, 2월에 비닐하우스에서 심으면 4월에 수확한다. 봄 재배는 4월에 파종해 6월에 수확하고, 해발 600m 이상 고랭지에서는 5, 6월에 파종해 8, 9월에 수확한다. 올해는 여름에 기온이 높고 비가 많이 와 고랭지 배추의 작황이 좋지 않았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8월에 파종해 10~11월에 수확하는 가을배추다. 가을에 난 배추는 김장용으로 대부분 소비된다. 김장용 가을배추는 한 해에 135만t 정도 소비된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김장용 가을배추의 생산량은 117만t으로 예년보다 감소할 전망이다. 재배면적이 줄고, 잦은 비와 이상 고온으로 작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와 변비에도 효과

배추는 97%가 수분으로 이뤄져 있다. 배추 100g에는 회분 0.4㎎, 칼슘 55㎎, 철 0.3㎎, 칼륨 230㎎, 비타민C 32㎎이 들어 있다.

풍부한 비타민C 덕분에 감기를 물리치는 데 좋다. 민간요법에선 배추를 약간 말려서 뜨거운 물을 붓고 사흘쯤 두면 신맛이 나는데 기침과 가래 증상을 완화해준다고 알려져 있다. 몸살 기운이 있을 때에는 배추뿌리차를 약 대용으로 마시기도 했다.

배추는 비장(지라)과 위장을 강하게 해 소화불량, 변비, 해열, 종기, 숙취에도 좋다. 최근엔 혈중 콜레스테롤을 태우는 성분도 있어 다이어트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배추 자체도 영양가가 높지만 김치를 만드는 발효기술과 만났을 때 더 큰 영양 덩어리가 된다. 2006년 미국의 ‘헬스’지는 배추김치를 세계 5대 건강음식으로 선정했다. 배추와 무뿐 아니라 각종 양념채소와 젓갈류를 넣고 발효시킨 김치는 ‘100가지 다른 반찬을 이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양 덩어리다. 익은 김치가 신맛이 나는 이유는 유산균 때문인데 요구르트의 4배 정도가 들어 있다. 열량이 100g에 18㎉로 낮고 섬유질이 풍부해 다이어트, 변비예방 음식으로도 제격이다.

박혜련 명지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김치의 유산균은 해로운 헬리코박터나 리스테리아균을 억제·제거하는 기능이 있고, 이질 등 세균성병원균에 대한 항균력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박 교수는 “김치를 소금물에 절이면 효소의 발효작용으로 아미노산과 젖산이 생성돼 맛이 좋아진다. 김치에 들어가는 다양한 젓갈은 칼슘·구리·철분 등 무기질과 단백질을 보충해주고 고추·파 등의 카로틴 성분은 항산화 작용을 한다”고 덧붙였다.

배추+무 합친 배무채 개발

요리에서 배추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음력 10월 입동을 전후로 한 김장철에 소비량이 가장 많다. 된장을 풀어 맑게 끓여낸 배춧국은 해장용으로 제격이다. 배춧잎으로 전을 부쳐 제사상에 올리기도 하고, 잎을 꾸덕꾸덕하게 말려 우거지로도 먹는다.

최근에는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배추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2008년 10월 배추에서 항암물질인 ‘설포라판’에 관련한 유전자를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회에 보고했다. 설포라판은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는 강력한 항암물질로 방광암·유방암·간암 등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진청 산하 국립원예특작과학원의 박수형 박사는 “기능성 배추에서 항암물질을 추출해 신약개발에 이용한다면 경제적 가치가 연간 1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해 3월에는 국내 한 벤처기업이 농진청과 공동으로 무와 배추의 종자를 합쳐 개량한 혼합식물 ‘배무채’를 세계 최초로 개발하기도 했다. 배무채는 설포라판이 다량 함유돼 있다. 농진청은 5년 안에 국내 종자 판매액만 연간 50억원에 달할 것으로 기대했다.

송영옥 부산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논문에서 “배추김치에서 추출한 항산화활성물질(HDMPPA)이 혈중 지질을 낮추고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송 교수는 “배추김치 100g에 1㎎ 함유돼 있는데 우리 국민이 1인당 하루 평균 김치 섭취량이 90g 정도인 것으로 볼 때 김치만 꾸준히 먹어도 어느 정도 동맥경화 발생을 억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풍년이면 가격 폭락
중국산 ‘납 김치’ 파동 땐 폭등
배추도 해마다 수난 겪죠

배추값 파동에는 일정한 흐름이 있다. 가격이 폭등한 이듬해에는 어김없이 폭락하고, 폭락한 이듬해에는 폭등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지난해에는 배추농사가 풍년이었다. 한 포기당 산지 출하가격이 500원이 채 안 됐다. 수확을 포기한 채 1년 농사를 갈아 엎는 농민들도 있었다. 5t 트럭 한 대 분량에 230만원을 받아야 본전이지만 시세는 100만원에 못 미쳤다. 지난해 10월 서울 가락동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 배추 3포기 값은 2600원 선이었다. 4000원 선을 유지했던 2008년 같은 시기와 크게 차이 난다.

2005년에도 배추값이 크게 올랐다. 이때는 납이 들어간 중국산 김치 파동으로 소비자 불안이 확산되면서 국내산 배추값이 껑충 뛰었다. 당시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는 5t 트럭 기준 배추 경매가격이 476만5000원으로 2000~2004년 평균 가격(344만648원)보다 38% 값을 더 쳐줬다. 당시에는 고랭지 배추 생산량이 감소하고 작황이 좋지 않아 전년도인 2004년보다는 두 배 가까이로 올랐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6년에는 다시 ㎏당 188원으로 폭락했다. 그해 10월 중순 ㎏당 도매가격이 209원에서 하순에는 188원까지 떨어졌다. 11월 들어 농림부가 산지에서 사들인 배추를 폐기해 수급을 조절하면서 11월 상순에는 224원, 중순에는 268원으로 다소 진정됐다. 그러나 이는 2005년 같은 기간 시세(㎏당 479원)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반면 중국산 김치 수입은 계속 늘어 2006년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안수환 경기도 농산유통과장은 “작년의 배추값 폭락 원인은 재배면적이 늘고 작황이 좋은 데다 출하시기가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인데 신종 플루로 학교·식당 등 집단급식이 줄면서 배추 소비가 덩달아 줄어든 것도 원인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역대 배추값 추이와 원인을 살펴보면 장래를 가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