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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북시대] 대남사업 창구 통일전선부로 단일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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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북한에서 출판물을 수입하는 한 사업자는 지난해 말 북한으로부터 이례적인 내용의 팩스 한 장을 받았다. "북한 측 계약주체를 바꾸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업자는 그동안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와 거래를 해왔다. 그런데 민경련 대신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가 사업을 담당하게 됐다는 것이다. 다른 대북지원단체도 지난 1월 북측 파트너가 남북 사회.문화교류를 담당하는 민화협에서 민경련으로 바뀌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북한이 남북교류 사업 과정에서 이미 계약된 사안을 놓고 계약주체를 바꾸자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의 이같은 제안들은 지난해 '9월1일 지침'에 따라 대남사업 창구를 노동당 통일전선부(통전부)로 단일화한 데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 어떻게 바뀌었나=지금까지 대남 경제교류는 내각 산하의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가 맡아왔다. 사회.문화 교류는 당 소속의 민화협이 주도해왔다. 이번 조직개편의 골자는 당 통일전선부 산하의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가 민경협과 민화협을 모두 관장토록 한 것이다. 민화협도 내부 조직을 개편했다. 한 소식통은 "민화협이 한국의 언론기관이나 문화.예술 단체들과의 교류는 물론, 국내 NGO 단체들의 대북사업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민화협에서 담당해오던 NGO 단체들의 경제지원 업무는 민경협으로 이관하고 민경협이 주관해 오던 출판물 등 사회.문화 교류 사업은 민화협으로 넘긴 것이다. 정부당국자는 "한국 대북사업 단체들과의 사업 파트너가 바뀐 것은 민화협과 민경협의 중복된 사업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북한은 지난해 '6월 9일 지침'에 따라 이전까지 민간 차원의 남북경협을 담당하던 민경련의 상급기관으로 민경협을 신설했다. 남북경협 확대에 따른 업무량 증가로 조직개편이 불가피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설된 민경협은 민경련 이외에도 산하에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남북회담을 담당하는 부서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경련은 산하에 삼천리총회사(소프트웨어 교류), 광명성총회사(가공품), 개선총회사(농수산물) 등을 두고 민간 경제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이 지난 1월 대북사업자에게 발급한 초청장도 민경련 명의로 돼 있어 민경련이 지속적으로 활동 중임이 확인됐다.

◆ 왜 개편했나=북한의 대남기관 개편은 지난해 하반기 당을 슬림화하고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동당 조직개편과 맞물려 진행됐다는 분석이다. 북한은 지난해 7월 김일성 전 주석 10주기 조문 불허 등을 이유로 남북 장관급회담과 경제협력추진위원회를 거부하는 등 남북교류의 문을 닫고 내부 조직정비를 해왔다. 이 과정에서 효율성이 낮다는 지적을 받아온 대남사업 기관의 개편이 이뤄졌다. 이번 개편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또 남북경제 교류에서도 특이한 실적이 없었던 점도 개편을 촉진한 것으로 분석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은 남북회담 등에서 우리의 통일부 조직에 관심을 보이며 북한의 대남기관 업무가 겹치거나 기관 본위주의로 인해 업무 수행의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비록 북핵 문제로 인해 남북관계가 동결상태에 있지만 본격적인 남북경협을 대비한 차원이란 분석도 있다. 시범단지 공장을 가동 중인 개성공단과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금강산 관광을 전담하는 부서를 확대한 것이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 업무를 도맡아 왔던 김용순 비서와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이 사망한 공백을 채울 만한 인물의 부재도 개편의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동결을 계기로 조직개편과 세대교체를 통해 분위기를 바꿔보려는 의지라는 지적이다.

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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