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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현대건설 우선매수청구권 달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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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해 승부수를 던졌다.

 현대그룹은 최근 현대건설 채권단에 “현대건설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달라”고 공식 요구했다고 채권단 관계자가 20일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재계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18일 현대건설 매각 주간사인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에 이 같은 내용의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대건설 인수전에는 현대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우선매수청구권을 달라는 것은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본입찰 결과와 관계없이 현대건설을 사들일 권리를 현대그룹에 먼저 달라는 뜻이다.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이 본입찰에서 각각 인수가격을 써내면 채권단이 먼저 현대그룹에 둘 중 높은 가격에 현대건설을 매입할 것인지 의사를 묻고, 현대그룹이 이를 받아들이면 매각 절차가 끝나는 방식이다.

 채권단에 따르면 현대그룹은 이 같은 요구의 근거로 2003년 제정된 ‘채권금융기관 출자전환주식 관리 및 매각 준칙’을 들고 있다. 준칙 12조 1항은 ‘부실 책임이 있는 구(舊) 사주에 대해선 원칙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했다. 다만 ‘부실 책임의 정도 및 사재 출연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노력의 사후평가를 통해 (구 사주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어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의 부실은 이라크에서 받지 못한 공사 미수금과 경기 침체가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현대건설의 옛 주인인 현대그룹은 고(故) 정몽헌 회장 주도로 44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는 등 경영 정상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은 2001년 채권단 소유로 넘어가기 전까지 고 정주영 명예회장과 정몽헌 회장 등이 최대 지분(25.06%)을 보유하고 있었다.

 채권단은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이미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데 현대그룹에 우선매수청구권을 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구 사주를 넓게 보면 현대·현대차그룹을 포함한 범현대가가 모두 포함돼 우선권을 따지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재계에선 현대그룹이 우선매수청구권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김선하·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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