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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정직은 가장 좋은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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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며칠 전 노무현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부동산 투기자들에게 전쟁을 선포했다. 그로부터 이틀 후 서민들에게 평등보다 성장을 중시하며 조만간 호황이 올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부동산 투기를 막아야 한다던 바로 그 사람, 경제부총리마저 부동산 치부 의혹에 휘말리게 됐으니 정말 통탄할 일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에 대단히 무거운 걸림돌이 될 것이다. 또 그의 경제개혁 실현을 기대하던 서민들의 '허탈감'은 어떠한 수사로도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개혁 걸림돌

국제투명성기구 독일 부회장 안케 마르티니는 부패 방지를 위해서는 "법적 규율보다도 모범적 행위가 더욱 절실하다"고 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진 마당에 그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는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유럽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미지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그가 국내정치의 민주화와 투명화를 실현해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또 한국의 고질인 부패.부정을 근절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 이 같은 평판은 노 대통령 자신도 지난해 특히 영국.프랑스 방문 때 느꼈으리라 믿는다. 그는 조만간 독일을 방문할 예정이며 필자의 대학이 그를 초대하고 싶어하는 큰 이유도 바로 그의 이미지 때문이다. 그는 인권 변호사의 경력으로 항상 약한 자와 같이하며 투명한 정치를 추진하려는 새로운 세대의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직자들의 부동산투기, 재테크에 의한 치부 등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부인.아들.시어머니 등이 사건의 행위자로 등장하고 직접 연루자는 "몰랐다"거나 "기억 못한다"고 하는 불가사의한 일을 자주 보게 된다.

공직자 및 국회의원의 부동산 투기 등에 의한 치부를 방지하기 위해 거론되는 것이 일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백지신탁제도(Blind Trust)다. 그러나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정부의 경우는 오히려 제도적 혼잡을 초래했고, 영국의 경우 2002년 신탁펀드가 주택 구매를 하는 데 총리 부인인 셰리 블레어가 연루됐다는 이른바 '셰리 게이트'가 발생했다. 미국에서도 유가증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성공은 없다. 사실 '신탁 모델'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특히 독일에서 쓰라리게 경험한 바 있다.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 최선책은 없다. 차선책으로 공직자의 윤리와 도덕에 호소하는 방법밖에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르티니가 말한 것처럼 "누구라도 자기 스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전 독일 연방 대통령 폰 바이츠제커는 딸의 박사 논문 작성을 돕기 위해 연방대통령의 공식 서한을 보내 당시 동독의 호네커에게 연구자료를 부탁한 적이 있다. 그리고 전 연방의회 의장 쥐스무트는 의장 관용차를 이용, 주말에 스위스에 있는 딸을 빈번하게 방문했다. 그들은 '공'과'사'를 구별하지 못했다는 신랄한 비평의 대상이 돼 연방의회에 공식 사과했다.

가족도 공인의식 가져야

공직자의 윤리와 도덕에 대한 기본적인 발상은 법 이전의 문제다. 공직자와 그의 측근은 '공인'이란 인식을 스스로 가져야 한다. 이것은 베버가 말한 '성숙한 정치인의 숙명적인 과제'로서 '정치를 직업'으로 선택한 사람은 행동의 원칙과 책임에 관한 윤리를 동시에 지키는 자다. 칸트는 한마디로 "정직함은 가장 좋은 정치"라고 했다.

한국 정치 엘리트의 치부 방법이 불로소득이라면 누가 '노동'을 하고 싶어할까. 노무현 대통령의 '부동산 투기 근절을 위한 무기'는 과연 무엇인가.

박성조 서울대 행정대학원 초빙교수.정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