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르포] 정신장애 앓는 보육원 아이들 (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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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유진
   인턴기자

본 기사는 온라인 뉴스 용으로 제작된 2회 시리즈의 탐사보도 기사입니다. 따라서 중앙일보 지면에는 실리지 않습니다. 본 취재는 1월 19일부터 2월 24일까지 이뤄졌습니다. 서울시 소속 아동양육시설 3곳(은평천사원, 영락보린원, 상록보육원)에서 취재에 협조해주셨습니다. 중앙일보 탐사기획팀의 홍유진(24·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졸업·사진) 인턴기자가 취재하고 강민석·김성탁 기자가 글을 감수했습니다. 아동 인권을 고려해 아이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을 썼습니다. [편집자주]

어른들이 남긴 마음의 상처

모두가 어렵던 시절, 고아원은 부모를 잃은 아이들의 피난처였다. 그러나 요즘 양육시설에 있는 아이의 약 70%는 기혼 가정의 자녀. 이제 더 이상 고아(孤兒: 부모가 없는 아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고아원은 이미 법적으로도 ‘아동양육시설(보육원)’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사회는 아직 고아원으로만 기억하려 한다. 먹고 자는 문제만 해결해주면 된다고 쉽게 생각해서는 아닐까. 상처받은 아이들에겐 사랑과 관심이 더 필요하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2월 17일 오전 9시 반.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의 영락보린원에서 양재동 서울시립아동병원으로 가는 ‘클릭’승용차 안에 합창이 울려 퍼진다. 이날의 ‘가수’는 언어 치료를 받으러 가는 동훈(7), 진숙(7), 혜은(6), 성수(6).

“학고 종이 때때때 어서 모니자. 서샌니니 우니늘 기다니신다.”
“반따반따 작은별 아르다께 비치다~♬”

혀 짧은 소리였지만 아이들은 신바람이 나서 불러댄다. 뒤늦게 말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있는 아이들. 차를 운전하던 영락보린원 관리주임 김용선(48) 씨는 “아주 자기들이 작사, 작곡을 다하네”라고 농담을 건넨다.

영락보린원 소속 간호사 박미자(46) 씨가 취재 기자에게 설명한다.

“혜은이가 왔을 때 4살이었는데 발음할 수 있는 단어가 없었어요. 그래서 ‘엄마’부터 가르쳤어요. 그래도 여기 (치료) 오면서부터 자신감이 붙어서, 되든 안되든 계속 떠들어요.”

▶ 영락보린원생인 혜은(오른쪽)이와 성수가 서울시립아동병원에서 간호사와 인형놀이를 하며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 평소 말을 걸어도 대꾸를 잘 하지 않는 혜은이는 치료 중 환하게 웃고 질문에 큰 소리로 답했다.

혜은이는 보린원에 오기 전부터 언어 장애를 보였다고 한다. 엄마가 정신질환을 앓으면서 혜은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혜은이에게 말을 걸어도 대답을 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마음의 상처가 언어장애로 나타났다고 할까. 상처받지 않은 아이들이 거의 없기에 양육시설마다 이렇게 언어장애를 앓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다.

언어 장애만이 아니다. 서울시 관악구 남현동의 상록보육원에 사는 선우(9)는 지난해까지 방에다 대변을 쌌다. 음식을 먹이기만 하면 바로 대변으로 나와 버려 하루에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혀야 했다. 선우 마음속 불만이 배설로 표출이 되는, 일종의 행동 장애다. 선우는 엄마가 가출한 후 아버지와 여관에서 생활해왔다. 그러다 아버지마저 행방불명되자 여관주인에 의해 시설에 보내졌다.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적 장애가 오는 아이도 있다. 영락보린원의 순호(11)는 ‘틱’ 장애 판정을 받았다. 틱 장애란 자신도 모르게 근육이 빠른 속도로 리듬감 없이 반복해서 움직이거나 소리를 내는 장애를 말한다. 음성 틱과 운동 틱, 뚜렛장애(운동틱과 음성틱이 동시에 나타나는 장애)등 3가지 형태가 있는데, 순호는 가장 심한 뚜렛장애를 겪고 있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순호는 20초 간격으로 얼굴을 찡그렸다 폈다 하더니, 다시 목을 움츠렸다 늘렸다 했다. 간호사 박미자 씨는“6개월에서 1년 정도는 목이 아예 경직되어서 돌리질 못했어요”라고 했다. 순호를 치료 중인 ‘사는기쁨’ 신경정신과의 김현수 원장은 “틱 장애는 원인을 잘 모른다. 스트레스와 관련이 깊은 데, 학습도 문제가 있고,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놀림도 당했던 것 같다”고 진단했다.

이렇게 언어나 심리장애 등을 갖고 있는, 정신장애아들은 얼마나 될까.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정확한 통계가 제시된 적은 없다. 그만큼 사회의 관심이 부족했던 탓이다. 그러나 일선 양육시설 관계자는 시설 당 3분의 1에 육박할 것이라고 추정한다. 서울의 33개 양육시설에 있는 2889명의 아이들 가운데 1000명 가까이 정신 장애를 갖고 있다는 얘기다.

정신장애아 가운데는 언어나 심리장애 외에 우울증(정서 장애)을 겪고 있는 사례가 많다. 우울증 환자까지 포함하면 수치는 3분의 1 보다 늘어날 수 있다. 실제 지난해 8월에서 10월까지 행정자치부 후원으로 한국성서대학교 최선희 교수가 수도권 일원의 12개 양육시설을 대상으로 조사한 『시설거주 아동·청소년의 생활실태』에 따르면 정서장애의 하나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양육시설 아동들은 일반 아동에 비해 약 2.5배나 많았다. 최 교수에 따르면 우울증으로 진단 가능한 아이들은 40% 정도였고, 우울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담을 요하는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60~65%나 됐다.

우울증이나 정서장애 아이들의 특징은 충동 조절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기자가 상록보육원에 사는 은수(6)를 만났을 때의 일이다. 은수는 “카메라, 카메라”하더니, 기자에게 휴대폰을 달라고 했다. 은수가 가지고 놀던 휴대폰을 보육원의 다른 아이가 빼앗았다. 갑자기 은수의 행동이 변했다. 기자에게 “저리 가!”라고 소리친 은수는 분을 못 이겼던지, 손으로 빈 호치키스를 “탁 탁 탁 탁” 계속 찍었다. 그러다가 장난감 핸드폰을 들고 혼자 말하고 대답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 제발 생일축하 파티하러 와 줘”
“싫어”
“그래,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야”

은수는 한 시간 내내 중얼거리면서 기자를 흘겨보곤 했다. 이마저 양육시설에 들어왔을 당시에 비하면 상당히 나아진 상태라고 한다. 은수가 들어온 건 두 살 때. 화가 나면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벽에 자기 머리를 찧었다고 한다. 생활지도원는 “머리를 벽에 치는 걸 보고 시설에 오기 전 일에 대한 잠재의식이 은수 머릿속에 있는 걸 알았다”고 설명했다. 은수는 쌍둥이였다고 한다. 사고로 쌍둥이 동생이 죽자, 엄마는 충격을 받아 집을 나갔고, 아빠도 은수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보육원 관계자들이 전했다.

충동조절 능력이 부족하면 폭력 등의 비행을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양육시설 관계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점이다. 영락보린원 신동헌 사무국장은 “충동조절 능력이 없는 아이들은 문제가 불거지면 폭력이나 가출로 해결하려 합니다. 그러면 양육시설에 있지 못하게 됩니다. 영원히 하류층에서 살아가야 하는 거죠”라고 했다.

양육시설 아이들이 정서장애에 시달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가정해체 과정에서 이미 마음에 깊은 상처를 안고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 양육시설 관계자는 “아이들은 대개 부모가 몇 년 동안 지지고 볶다가 이혼하거나, 방임 상태에서 굶주리다가 와요. 아니면 할머니 집, 고모 집 등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지쳐서 오죠. 처음에 왔을 때 눈에 초점이 없이 멍한 아이들도 있어요”라고 전했다.

은평천사원 손진호 복지사는 “예전 고아원에선 배 곯지 않고 춥지 않으면 됐지만 지금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건 단순한 양육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가정 해체로 들어온 아이들이 제대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국가가 해야 할 일 아니냐”고 했다.

홍유진<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졸업 ·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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