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테랑 전 대통령 '숨겨진 딸' 마자린 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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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식적으로 아버지가 없었다. 학교 친구들은 우리집, 나의 저녁시간, 주말, 방학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침묵의 협약은 가정사보다 중요했으며 모두 그 협약에 가입해 있었다."

고(故)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의 숨겨진 딸 마자린 팽조(30)가 아버지와의 비밀스러운 생활 19년을 책으로 펴냈다. 마자린은 미테랑이 박물관 큐레이터인 애인 안 팽조와의 사이에서 낳은 혼외의 딸이다. 28일 출간되는 마자린의 책 '함구(Bouche Cousue)'를 누벨 옵세르바퇴르지가 미리 소개했다.

미테랑은 대통령 재임 기간 14년의 대부분을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에서 지내지 않았다. 미테랑이 본부인.두 아들과 살고 있다고 국민이 생각할 때 파리 시내 안 팽조의 아파트에서 세 식구가 남의 눈을 피해 생활했다. 프랑스 최고 권력자의 딸이었지만 매일 저녁 아버지를 만나면서도 공식적으로는 '아빠'라고 부를 수 없었다.

마자린은 "아침식사 후 엄마가 자전거를 타고 박물관으로 출근하면 아빠는 승용차로 엘리제궁으로 향했고 나는 학교로 갔다"고 밝혔다. 가끔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관용차 안에 납작 엎드려 몸을 숨긴 채 엘리제궁에 가기도 했다.

"아버지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나를 몰랐다. 때때로 청바지를 입은 소녀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을 뿐이다."

마자린이 남들처럼 평범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1981년 미테랑이 대통령 선거에 당선돼 TV화면에 나오는 순간이었다고 한다. 당시의 감정을 "잘 알지만 동시에 모르기도 하는 사람이 TV에 나왔다"고 적고 있다.

마자린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94년 파리 마치지가 미테랑과 함께 파리의 한 식당을 나서는 사진을 보도하면서부터다. 2년 뒤 마자린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미테랑의 장례식에서 최초로 프랑스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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