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53년만에 대통령 직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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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중동의 최대 정치강국 이집트가 대대적인 민주화 개혁에 나섰다. 53년 만에 복수 후보가 출마하는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될 전망이다.

이집트의 정치개혁 움직임은 앞으로 다른 중동국가들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추구하고 있는 '대(大)중동민주화 구상'에 적극적인 협력자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 역사적 개혁조치=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26일 야권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전격 수용했다. 그는 9월 다섯 번째 6년 임기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자신의 고향인 미누피야 대학에서 한 연설을 통해 깜짝 개혁조치를 발표했다. 모든 정당에 대통령 선거 참여 기회를 주고 복수 후보 중에서 국민이 직접 비밀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직선제 개헌도 의회에 요청했다.

"의회가 3분의 2의 지지로 대통령 단일후보를 지명해 국민 찬반투표를 거치는 간선제는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고 대통령은 강조했다.

올 들어 직선제 개헌을 위한 침묵시위를 주도하던 야권도 이번 대통령의 발표를 대환영했다. 주요 야당인 타감무의 리파아트 알사이드 당수는 "우리가 산을 움직였다"고 승리를 선언했다. 당수는 또 "52년 왕정을 무너뜨린 혁명 이후 이집트 집권당이 취한 최대의 정치개혁 조치"라는 평가도 내놓았다.

◆ 불안해진 중동 정권=이집트의 움직임에 중동 정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특별한 공식입장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이집트의 이번 조치로 중동권의 대부분 왕정 및 독재공화 정권은 곤경에 빠졌다"고 27일 분석했다.

방송에 출연한 요르단 대학 전략연구소 무스타파 하마르나 소장은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미국이 장담한 '민주화 도미노'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올해 이라크와 팔레스타인에서는 이미 민주적 선거가 성공적으로 실시된 상황에서 최대 정치강국 이집트도 '예상치 못했던' 개혁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이다. 하마르나 소장은 또 "야권과 시민단체들의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권력세습 반대 등의 요구에 이집트 정부가 굴복하는 모습이 더욱 아랍 정권을 불안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랍 각국의 야권도 유사한 요구를 더욱 강력히 추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력도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아랍 각국은 안팎의 개혁 압력에 정신을 못 차릴 것"이라고 범아랍 일간 알하야트는 27일 전망했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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