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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청거리는 학교] 上.학부모회 치맛바람에 구멍 난 '교사 양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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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교와 대학에서 성적 비리가 잇따라 터져나오면서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학부모들은 내신의 공정성을 불신하면서 "학교에 내 자식을 안심하고 맡길 수 있나"라고 반문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2008년부터 내신의 비중을 결정적으로 강화해 고교교육을 정상화하려는 교육부 정책 방향에도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성적 비리 사건의 파장과 원인.대책 등을 3회 시리즈로 점검한다.

"성적 비리가 벌어진 곳이 어디 이 학교들뿐이겠는가. 이제 누구를 믿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서울 강동구 거주 학부모 강애란)

교사와 학부모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문일고 내신성적 조작, 입학처장과 출제위원 교수의 공모로 빚어진 서강대 부정입학 사건 등 지난 24일 검.경의 수사 결과 드러난 일련의 학교 비리에 이어 25일 E고.T고 등 다른 고교에서도 교사에 의한 성적 비리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교육계에 심각한 파장이 예상된다.

학부모들의 학교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고, 교사와 교수의 권위도 땅에 떨어졌다.

성적 비리 사건은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일부 학부모의 빗나간 자식 사랑과 금품 앞에서 교사의 본분을 망각한 교사들의 도덕 불감증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특히 교사가 학부모에게 시험지와 정답을 건네준 사례가 처음 등장했다. 교육 당국의 솜방망이 처벌도 동일 교사에 의한 재범을 가능하게 했다. 이래저래 교육 당국의 부실한 사후 관리가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교육 당국의 부실한 사후 관리=E고의 C 교사는 1999년 1학기 말 시험문제를 사전에 유출했으나 경고만 받는 것으로 끝났다. 결국 C 교사는 2003년 2학년 2학기 말 시험문제를 또다시 유출하는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가 적발됐다. 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시교육청이 초기에 제대로 조치했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부정행위였다.

시 교육청은 문일고 사건과 관련해서도 2002년 담당 장학사가 성적 조작 사실을 처음 확인하고도 교육청 감사과나 수사기관에 통보하지 않은 채 학교장에게만 자체 징계하도록 하는 등 일선 학교 감독 행정에 허점을 드러냈다.

경기도교육청은 안산 소재 D고 교장이 2002학년도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결과 영어.사회과목에서 100점이 없다는 이유로 담임교사들에게 OMR카드를 새로 작성해 점수를 전체적으로 올린 사실이 드러났으나 P 교무부장만 견책 조치하고 교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교사가 학부모에게 직접 정답 전달=지금까지 드러난 교사에 의한 성적 조작은 교사가 학생을 불러 답안을 새로 쓰게 하거나 교사가 직접 답안지를 고치는 경우였다. 문일고 사건의 경우 시험지를 과외교사에게 유출해 특정 학생들이 이를 보게 하는 방법도 동원됐다.

그러나 T고 공통사회 담당 S교사는 2001년도에 당시 2학년 학생 A군의 어머니에게 직접 영어.수학 등의 시험지와 정답을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S교사는 처음에는 "공통사회 시험문제와 정답을 평가담당 교사에게 제출하면서 평가담당 교사가 갖고 있던 이들 과목의 정답을 암기한 뒤 메모지에 옮겨 A군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A군은 학교 측에 "어머니가 정답을 적어주거나 시험지 인쇄물을 건네줘 보게 됐다"고 진술했다.

◆비리 자초하는 '관행'=성적 비리는 근본적으로 교사.학부모 간의 유착 관계에서 비롯된다. 문일고의 사례에서 드러났듯 학부모회가 교사.학부모 간 연결고리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학부모 강도금(44.서울 송파구 가락동)씨는 "귀찮고 돈이 들어도 학부모회를 하려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며 "학부모회에 참여하는 부모들은 담임 말고 다른 교사들에게도 특혜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그는 특히 "학부모회 구성은 교사들의 입김이 작용한다"며 "학부모회 구성 전에 '이번 학부모회(간부)는 누가 된다'는 소문이 돌면 그대로 되곤 하는데 학부모와 교사들의 사전 교감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현장에 감시 시스템이 없는 것도 문제다. 정진곤 한양대 교수는 "입학처장에게 입학업무의 전권이 맡겨져 있는 등 교육현장은 다른 행정기관과 달리 감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며 "이런 제도적 허점은 유혹을 낳게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피임용자인 교사.교수들이 학교업무 전반에 걸쳐 재단.학교장의 눈치를 봐야하는 일부 사립학교의 경우 감시 시스템의 작동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남중.한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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