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사설

황장엽 이후, 탈북자 사회의 다음 수순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가 사망한 직후 그가 살던 안가가 공개됐다. 담장은 온통 철망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위로 10여 대의 보안감시 카메라가 솟아 있다. 집 안에선 10여 명의 경호원이 사방을 경계했다. 그 닫힌 안가에 살며 황씨는 13년간 북한 민주화에 매진했다. 김정일 세습왕조의 치부를 드러내 추궁했고 남한 주민에겐 북한의 실체를 일깨워 줬다. 대북 경계심이 흐려질 때면 날카로운 말로 정신 차리게 했다. 북한을 떠받드는 주사파엔 호랑이 같은 존재였다. 그 누가 황장엽만큼 북한을 꿰뚫고 남한을 가르칠 수 있었겠는가. 그는 분명 거목이었다.

스러진 거목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탈북자사회는 새 활로를 모색 중이다. 구체적으론 황씨가 이끌던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후임을 찾는 작업이다. 장례가 치러진 나흘간 33개 탈북자단체 중 그런대로 활동 중인 15개가량의 단체가 의견을 교환했다. 몇몇 이름이 나온다. 탈북자동지회 회장이자 북한민주화위원회 수석 부위원장인 홍순경(63), 자유북한방송 대표이자 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성민(49), 역시 부위원장인 강철환(41) 등이다. 김성민 대표가 대세라는 얘기도 있다.

우리는 누가 새로운 구심점이 될지 예단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건 세대 교체는 분명해졌다. 문제는 세대 교체 이후 어떻게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담아내느냐다.

2만 명 가까운 탈북자사회 내부는 복잡하다. 대다수는 함경도같은 변경 출신이다. 굶다 지쳐 강을 넘고 중국에서 온갖 고생과 설움을 맛본 뒤 왔다. 북한이라면 치를 떤다. 그러나 같이 치를 떨어도 ‘평양에서 나름 살았고 서울에서도 잘사는’ 고위급 탈북 인사들이 치를 떠는 이유는 다르다. 그런 차이 때문에 고위 탈북자를 보는 기층 탈북자의 눈은 ‘여기서도 간부냐’며 곱지 않다. 같은 고위급이라도 출신·성향의 차이가 있다. 특히 북한 민주화를 위한 행동과 속도 측면에서 많이 다르다. 33개로 쪼개진 탈북자단체는 그런 차이와 갈등의 단면일 수 있다.

황장엽 타계는 갈등을 분출시킨다. 많은 탈북자가 지금 “황 선생은 철학자이자 사상가였을 뿐”이라고 한다. 행동이 약했던 엘리트 탈북자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래서 “북한의 세습 독재체제를 타도하는 데 성과를 거둘 인물이 필요하다”는 탈북자사회의 목소리가 높아 간다. 때마침 남한에서도 북한의 민주적 변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새 지도부가 유념할 과제다. 잘 실천한다면 탈북자사회의 정체성이 스스로 자조하듯 ‘2등 국민’이 아니라 ‘통일의 가교’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더 나아가 고령화로 활기를 잃어 가는 ‘이북 5도청’을 대신할 제도로도 변신할 수 있다. 그러려면 탈북자사회가 ‘북한 민주화를 위한 실천과 행동’을 모토로 삼아 내부 화합과 소통을 꾀할 때다.

중앙SUNDAY 무료체험구독신청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