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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스케’와 콩나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8호 31면

공개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가수 지망생들을 배틀 방식으로 탈락시켜 가면서 단 한 명의 수퍼스타를 뽑는 한국판 ‘아메리칸 아이돌’, ‘슈퍼스타K 시즌2’가 케이블TV 프로그램의 신기원을 열고 있다. 케이블TV의 ‘꿈의 시청률’이라는 10%는 물론이고 20%도 넘보고 있다. 오디션 참가자 수가 135만 명에 육박했었다는데, 우리나라 인구의 2.7%에 달하는 숫자다. 아무리 우리가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실로 대단한 기록이다.

코리안시리즈 진출은 좌절됐지만 두산 베어스는 삼성 라이온즈와 플레이오프전에서 명승부를 펼쳤다. 1차전 9.7%로 시작한 지상파 시청률은 5차전에서 13.6%까지 올랐다. 한 시간짜리 드라마 시청률로 환산할 경우 40%에 달하는 것이라고 한다. 두산은 최근 4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면서도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관객들에겐 성적보다 진한 감동을 줬다. 준플레이오프전에서 견원지간이었던 롯데 팬들이 두산을 응원하게 만들었고, 삼성 팬들도 두산의 투혼에 경외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심지어 축구팬들까지 야구 중계를 보게 만들었다.

취업 시즌이다. 금융권은 연봉이 높은 편이라 구직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만큼 들어가기 어렵다. 그래서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학점과 영어 공인 성적, 금융 3종 세트라고 불리는 자격증(증권투자상담사ㆍ선물거래상담사ㆍ증권파이낸셜플래너)까지 준비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금융회사 인사 담당자들이 “우리는 지금 다시 들어오라고 하면 절대 못 들어올 거야”라고 말할까. 하지만 입사 후 무슨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취업준비생이 왜 자기 돈을 들여 온갖 자격증을 미리 따야 하는가? 나중에 혹시 증권사나 자산운용사 등에서 필요하다면 그 직원들만 따로 교육시켜 자격증을 따도록 하면 된다.

‘슈퍼스타K’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좋은 선생님 밑에서 음악을 제대로 배워 노래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고 자신의 재능을 갈고닦아 온 사람들에게 기회를 줬기 때문일 것이다. 두산 베어스가 위대한 이유는 고가의 스타급 선수를 영입하기보다는 다른 구단에서 방출된 선수나 무명의 신인들을 잘 키워 명품 야구를 보여 줬기 때문이다.

유복한 환경에서 어려움 모르고 자라 좋은 학교, 높은 학점, 유창한 영어 실력에 다양한 자격증까지 갖춘 사람은 분명 뛰어난 인재다. 하지만 그렇게 화려한 ‘스펙’ 위주로 신입사원을 뽑는 게 최선이 아닐 수 있다. 화려한 스펙을 가진 신입사원이 그 금융회사에 얼마나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까. 실업계 고교 출신으로 ‘빽’도 없이 노력만으로 간부직까지 올라간 직장 상사들을 얼마나 존경하고 따를 수 있을까. 자기 한 달 봉급도 채 안 되는 단돈 몇백만원을 대출받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저소득층 고객의 간절한 심정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금융회사에서 신입사원 뽑는 것과 가수 오디션을 비교할 수야 없다. 그러나 이제 금융회사의 직원 선발기법도 좀 더 다양하고 정교하게 발전돼야 한다. 온도와 조도가 조절된 실내에서 물만 먹고 자라 미끈하지만 유약한 ‘콩나물’ 같은 직원들로 가득한 금융회사와 척박한 토양에서도 억세게 뿌리를 내리고 한여름의 땡볕과 한겨울의 눈보라를 이겨 낸 ‘콩나무’ 같은 직원들이 많이 있는 금융회사 중에서 어느 쪽의 미래가 더 밝을지는 분명하다. 현재 국내 굴지의 금융회사 최고경영자들 중에서 콩나무과가 아닌 분이 몇이나 되는가? 그런데도 신입사원은 왜 하나같이 콩나물과에서 뽑으려고 하는지 안타깝다.


이현철 2008~2010년 2월까지 금융위원회 자산운용 및 자본시장 업무 담당. 2004년부터 4년간 국제통화기금(IMF) 파견 근무. 행정고시 33회.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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