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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서 토종 콩·보리·밀 밀려나고 아열대 작물 올리브는 13년째 쑥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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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경남 사천에서 올리브 나무를 재배 중인 이영문씨는 “올리브 나무는 한국에서 자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13년째 잘 자라고 있어 국내 토착화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황선윤 기자]

12일 오후 경남 사천시 서포면 비토리 사천수협활어위판장에서 200m 떨어진 작은 섬. 비탈길을 따라 올라가자 재배 중인 식물마다 플라스틱으로 된 작은 이름표가 붙어 있다.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량작물도 있고 낯선 것도 눈에 띈다.

 20년간 토종 종자 보존과 온난화 대체작물을 연구해온 농민 이영문(57)씨의 개인 시험포장(면적 8200여㎡)이다. 이씨는 “영농에 활용하기 위해 종자를 연구하다 제법 규모가 큰 시험포장까지 갖게 됐다”고 말했다. 35년간 농사를 짓고 있는 이씨는 땅을 갈지 않는 ‘무경운 직파농법’의 전문가다.

 이씨의 안내에 따라 토종 대두(메주콩) 밭에 들어서자 잎·줄기 등이 누렇고 시들시들하다. 콩의 키도 작아 보인다. 이씨는 “올해 날씨가 매우 더웠고 비가 잦아 콩이 자라지 않고 해충 피해를 보았다”고 했다. 콩 꼬투리를 만져보니 열매가 맺혀 있지 않거나 아주 작은 알갱이뿐이다. 그는 “온난화의 영향으로 토종 콩마저 잘 자라지 않게 돼 개량품종 재배가 늘고 콩 재배지가 북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토종 밀·보리도 주산지인 영남에서 재배가 잘 안 돼 개량 품종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반면 아열대·열대 식물은 토착화되고 있다. 한국에서 자라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진 아열대 식물인 올리브가 이곳에서 13년째 자라고 있다. 외국에서 씨앗을 들여와 심은 결과 아무 탈 없이 자라고 있는 것.

 아열대 식물의 토착화 사례는 더 있다. 제주지방에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난지성의 소귀나무, 일본 남쪽 지방에 자생하는 열매마,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녹두나무, 아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덩굴 콩 등이 이 섬에서 몇 년째 잘 자라고 있다. 그는 “온난화로 시험 재배 중인 아열대식물 30여 종 가운데 20종은 국내 재배가 가능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그는 소귀나무와 아열대성 훼이조아 나무를 각각 3만 그루, 6000그루 증식해 농민회원에게 나눠주고 일부는 팔 계획이다. 계란 크기의 당도가 매우 높은 과일이 열리는 소귀나무·훼이조아가 국내에서도 시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열대 과일인 워터애플, 대추야자(종려나무) 묘목도 재배 중인 그는 “앞으로 국내 과일 판도는 아열대·열대로 바뀔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천=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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