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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영화] 숨바꼭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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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감독 : 존 폴슨

주연 : 로버트 드 니로.다코타 패닝

장르 : 공포

홈페이지 : www.foxkorea.co.kr/hidegame

등급 : 15세

20자평 :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다, 특히 당신의 기억은.

일상이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올 때, 아마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은 이런 때가 아닐까. '숨바꼭질'(Hide and Seek)은 이런 인간의 심리를 파고 든 공포영화다. 여기엔 사람 목을 싹둑싹둑 베어내는 피 튀기는 살인마나 잔혹하고 기괴한 수법으로 혀를 내두르게 하는 연쇄살인범은 없다. 후반부에 딱 한번 시체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별다른 끔찍한 사건도 없다. 기껏해야 물이 가득 담긴 욕조 안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죽은 채 발견된다든지, 딸이 항상 품에 끼고 살던 인형이 흉칙하게 일그러져 쓰레기통에서 발견되는 정도다. 하지만 상영시간 100여분 내내 영화는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일상의 다른 얼굴, 바로 숨바꼭질이 공포를 증폭시키는 효과적인 장치로 쓰인 덕분이다.

공포의 강도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높아지다 마지막에 긴장의 끈을 일순간 '탁' 끊어버리는 반전까지 더해져 공포영화에 거는 보통 이상의 기대치까지 충족시켜 준다. 소위 반전(反轉)영화로 무릎을 치게 만든 '식스 센스'나 '디 아더스'만큼은 아니더라도 또 한편의 기발한, 아니 어쩌면 더 충격적인 반전 공포영화로 기억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말이다.

숨바꼭질은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모티브다. 잠들기 전 항상 숨바꼭질 놀이를 해주던 엄마가 손목을 칼로 그어 욕조 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뒤 에밀리(다코타 패닝)는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친구라고는 오직 인형밖에 없이 스스로 고립돼 지내는 에밀리의 건강을 위해 유명 정신과 의사인 아빠 데이비드 캘러웨이 박사(로버트 드 니로)는 뉴욕 외곽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를 한다. 에밀리가 새 집에서 상상 속 친구 찰리와 숨바꼭질 놀이를 하면서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오전 2시 6분, 그러니까 아내가 욕실에서 발견된 그 시간에 데이비드가 악몽에 시달리다 깨어나보면 어김없이 욕실엔 괴기스러운 낙서가 그려져 있다. 하지만 에밀리는 자꾸만 "찰리가 한 짓"이라며 자신이 한짓을 부인한다.

찰리의 정체는 시종일관 관객의 호기심과 공포감을 자극한다. 처음엔 엄마의 죽음을 아빠의 탓으로 돌리는 아이가 만들어낸 상상 속의 친구라고만 생각되던 찰리가 점점 현실세계에 흔적을 남기면서 찰리가 과연 누구일까를 예측하는 재미도 만만찮다. 에밀리와 비슷한 나이의 딸을 병으로 잃은 옆집 아저씨, 딸이 예쁘다며 음흉한 미소를 띠는 보안관, 새벽에 문 밑으로 열쇠를 밀어넣는 집 관리인까지 마을 사람 모두가 한없이 선량한 얼굴을 했으나 동시에 한없이 의심스럽다.

번뜩이는 소재에 그럴듯한 반전까지 더해주는 '숨바꼭질'엔 마지막 서비스 하나가 더 남아 있다. 두가지 다른 결말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는 것. 영화사는 마지막 2분이 다른 두 버전의 프린트를 각각 60벌씩 스크린에 건다. 같은 영화를 보고도 딴 소리 하는 친구가 있다면, 그건 이런 이유 때문이란 걸 알아주시길.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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