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무섭게 밀려오는 차이나 머니 광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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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장이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더 많은 신흥국 통화를 포함시키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신흥시장 국가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으나 중국의 외환보유를 다변화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묻어난다.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2조5000억 달러가 넘는다. 여기에다 미국은 디플레이션에 직면해 있고 유럽연합(EU)은 재정적자 늪에서 미처 빠져 나오지 못한 데다 일본 경제도 기능부전(機能不全)에 빠져 있다. 차이나머니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경제성장을 기록 중인 신흥국으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한국에도 차이나머니는 무서운 기세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중국 투자자들의 한국 채권 순투자액이 2조8710억원에 달했다. 한국 주식도 766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거대한 외환보유액을 배경으로 한 중국투자공사(CIC)와 중국의 최대 연기금인 사회보장기금(SSF)이 첨병(尖兵)에 서고 있다. 이들은 미국 국채를 사재기한 데 이어 세계 자원시장을 휩쓴 큰손들이다. 이들의 한국 상륙은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평소 같으면 박수 치며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차이나머니의 급속한 유입에 따른 부작용이다. 벌써 원화 가치는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최근 한 달간 원-달러 환율은 4.59% 하락해 위안화(1.64% 하락)나 엔화(2.23% 하락), 태국 바트화(2.59% 하락)보다 두 배 이상의 하락 폭을 기록했다. 아시아 주요 통화 가운데 가장 심한 환율 몸살을 앓고 있다. 차이나머니가 채권 시장에 집중되면서 채권 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린 게 무색해질 정도다. 이제 차이나머니가 우리 경제에 교란(攪亂) 요인으로 등장한 것이다.

길게 보면 신경 쓰이는 대목이 한둘 아니다. 일본의 쓰라린 경험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일본은 차이나머니 유입으로 엔화 가치가 초(超) 강세를 보이자 도리 없이 외환시장에 개입했다. 얼마 전에는 댜오위다오(釣魚島) 분쟁 때 중국의 희토류 수출 제한에 무릎을 꿇었다. 언제 중국이 차이나머니를 무기로 한국을 압박할지 모를 일이다. 차이나머니의 급속한 이탈도 우리 경제에 파괴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돈에 꼬리표가 없는 만큼 굳이 차이나머니를 차별할 이유는 없다. 외환시장의 완전 자유화로 우리가 차이나머니의 유출입을 막을 수단도 없다. 하지만 차이나머니의 공습(空襲)은 이제 시작일 뿐, 앞으로 그 규모가 더 커질 게 분명하다. 우리에게 차이나머니는 양날의 칼이다. 잘 이용하면 고용이 늘어나고 경기 부양에 도움이 된다. 반면 미국이 달러화를 마구 찍어내는 상황에서 차이나머니까지 밀려오면 자산거품을 일으킬 수 있다. 이미 코스피 지수가 1900선을 넘었고 외환시장과 채권시장도 차이나머니의 태풍권에 들어갔다. 미리부터 대응책 마련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때다. 차이나머니가 약(藥)이 될지 독(毒)이 될지는 우리 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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