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배추김치만 김치더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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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 살아’. 80년대 가수 정광태의 김치 주제가처럼 김치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바로 그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 값이 뛰어도 너무 뛰었다. 배추 값이 이렇게 비싸니 밥상 차리는 일조차 우울하다. 배추김치 한 쪽 집어먹는 데도 젓가락 쥔 손이 다 떨릴 지경이다.

우리나라 김치가 200여 종이나 된다지만 배추김치를 대신할 건 사실 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밥상이 즐거워야 하루 일이 즐겁고, 그래야 우리 인생도 행복해지는 것인데.이럴 때 배추 값 한탄은 그만하고 조금은 싼 재료로 별미 김치를 한번 해 먹어 보자. 별식을 먹는다는 즐거움에 조금은 기분이 상쾌해질 수도 있다.

또 나라가 나서서 배추 값을 잡겠다니 별미 김치를 먹으며 기다리다 보면 진짜 배추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는 날도 조만간 올 터이니.

글=서정민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촬영협조=풀무원 김치박물관

‘양파·깻잎·고추·가지·호박·단감·고춧잎 …’

너무 비싼 배추. 잠시 배추김치를 참고 가지·양파·감·토마토 등으로 별미김치를 만들어 먹어 보자. 별미를 먹는 재미에 잠시 배추값 시름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길이 없으면 돌아가는 것도 생활의 지혜다.

풀무원 김치박물관의 신수지 학예사가 꼽은 가을철 김치 재료들이다. 사실 밭에서 나는 채소와 과일은 무엇이든 김치가 될 수 있다. 배추김치 담글 때 쓰는 양념만 만들 줄 알면 말이다. “김치의 사전적 정의는 ‘소금에 절인 배추나 무 따위를 고춧가루·파·마늘 따위의 양념에 버무린 뒤 발효시킨 음식’이에요. 실제로 우리 조상들은 이것을 기본으로 다양한 계절 채소·과일을 소금에 절이거나 날것을 나박썰기를 해서 김치 양념과 함께 버무려 먹었죠.”

물론 배추김치에 길들여진 입맛에는 낯설 수 있다. 하지만 신 학예사는 “대부분 고춧가루·파·마늘 등 배추김치에 들어가는 양념을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 기억 속의 ‘김치’ 맛을 거스르지 않는다”며 “이 기회에 색다른 식감의 김치를 담가보는 것도 경험”이라고 말했다. 백문이불여일견. 그래서 food&이 신 학예사와 함께 배추김치를 대체할 수 있는 채소·과일 김치들을 직접 담가봤다.

방법은 간단하다. 기본양념은 모두 집집마다 만들어 먹는 김치 양념으로 하면 된다. 고춧가루에다 다진 마늘과 생강, 젓갈, 풀이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다만 주재료에 따라 부재료와 젓갈을 어떻게 조합할 것인지 포인트만 알아두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이 밖에도 김치 양념에 여러 가지 채소를 버무려 보면, 내 손으로 새로운 별미 김치를 창조할 수 있을 거다.

1 가지김치   씹는 재미 가득

가지에다 약간의 부추와 실파로 소를 만들어 오이소박이처럼 만들어 먹는 게 포인트다. 양념에는 액체육젓을 넣으면 된다.

1 가지는 연하고 부드러운 것을 준비해 꼭지를 잘라낸다. 열십자로 칼집을 넣은 후 소금물에 절였다 씻어서 물기를 뺀다.

2 부추·실파는 깨끗이 씻어 2㎝ 길이로 썬다.

3 큰 그릇에 부추와 실파를 넣고 김치 양념으로 버무린다. 물기 뺀 가지의 칼집 사이로 버무린 소를 넣고 항아리에 담는다.

가지김치는 우리 조상들이 ‘가을철 김치의 으뜸’으로 꼽았던 별미다. 소금에 절여 겉은 뽀득하고 안은 물컹한 것이 입안에서 씹는 재미가 난다. 김치를 담근 후 바로 먹으면 약간 아린 맛이 나므로 2~3일 정도 익혔다 먹는 게 제일 좋다. 부추 대신 쪽파를 넣기도 한다.

2 감김치   담근 뒤 바로바로 먹어야

원래는 감 5개에 배추 한 포기와 무 반 개 정도를 넣지만 배추를 빼도 된다. 젓갈은 멸치젓이 가장 맛있다. 상큼하게 먹으려면 고춧가루와 새우젓만으로 버무려 먹어도 좋다.

1 감과 무·배추는 나박썰기를 해서 소금에 절인다.

2 큰 그릇에 물기를 뺀 재료를 넣고 김치 양념으로 버무려 단지에 담는다.

황해도 지방의 대표적인 김치로 씹을 때마다 달착지근한 맛이 느껴지는 게 특징이다. 단감은 쉽게 무르므로 오래 두지 말고 바로 먹는 것이 좋다.

3 양파김치  소금에 절여 먹으면 아삭

양파 6개에 무 1/4개 분량이 적당하다. 실파 약간을 넣고 멸치젓을 사용하면 된다.

1 양파는 폭 3㎝ 정도로 채 썰어 소금물에 1시간 정도 절인 다음 체에 밭쳐 물기를 뺀다.

2 무와 실파는 깨끗이 씻은 후 채 썬다.

3 절인 양파에 무·실파·양념을 넣고 버무린다.

양파를 소금에 절일 때는 자주 뒤집어주는 게 좋다. 소금에 절인 양파는 특유의 아린 맛은 덜하고 씹는 맛은 한결 아삭해진다.

4 더덕김치   겨울철 입맛 살려

더덕에 부추를 넣어 소박이 김치처럼 만든다. 새우젓으로 간을 하는데 곱게 다져 사용한다.

1 더덕은 굵고 곧은 것으로 준비해 껍질을 벗기고 씻은 후 5㎝ 길이로 자른다. 양끝을 1㎝씩 남기고 가운데에 열십자로 칼집을 넣어 소금물에 30분 정도 담가 절인 후 씻어 건진다.

2 부추는 1㎝ 길이로 썰고 양념에 들어갈 새우젓은 곱게 다져 사용한다.

3 그릇에 부추와 양념을 버무려 소를 만든다.

4 더덕 칼집 사이에 준비한 소를 꼭꼭 채워 넣은 후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는다.

배추 값에 비해 더덕이 싼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덕은 밭에서 나는 인삼이라고 불릴 만큼 폐와 신장을 튼튼하게 하는 약효가 있고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특유의 향 때문에 입맛 없는 겨울철에 먹으면 좋은 김치로 꼽힌다. 더덕을 소금물에 충분히 절여야 떫고 쌉쌀한 맛을 빼고 양념 소를 넣을 때도 부서지지 않는다.

5 고추소박이   씹을수록 단맛 나와

굵은 풋고추에 무와 실파로 버무린 소를 넣은 김치다. 멸치젓을 사용하면 맛있다.

1 부드럽고 통통한 풋고추를 골라 꼭지를 짧게 자르고 한 번만 칼집을 내서 고추씨를 뺀다. 소금물에 30분~1시간 정도 담가 절였다 물기를 뺀다.

2 무와 파는 채 썰어 김치 양념과 버무려 소를 만든다. 통깨도 함께 넣으면 맛있다.

3 고추 안에 소를 채운다.

고추소박이는 처음에는 약간 쌉쌀하고 매운맛도 나지만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시중에서 판매하는 ‘아삭고추’를 이용하면 씹는 맛이 한결 싱싱해진다.

6 토마토김치  덜 익은 것 써야

푸른 기운이 많은 덜 익은 토마토를 써야 한다. 부추나 실파, 양파 등 좋아하는 채소 한 가지 정도 더 섞어도 맛있다. 액젓과 새우젓을 넣는데 새우젓을 넉넉하게 넣어야 맛있다.

1 토마토를 6~8등분으로 먹기 좋게 썬다.

2 부추나 실파는 2~3㎝정도로 썬다. 양파를 넣으려면 채 썬 뒤 찬물에 담가 매운 기운을 빼놓는다.

3 큰 그릇에 토마토와 채소를 넣고 김치 양념에 버무린다. 입맛에 따라 약간의 식초와 참기름 등을 넣어 먹어도 된다.

익지 않은 토마토를 사용해 아삭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서양에서도 토마토와 핫소스 등을 곁들여 맵게 먹는 살사가 있는 것처럼 토마토와 매운 맛은 은근히 잘 어울린다.

고들빼기김치   담근 뒤 1주 지나야 제맛

당장 해 먹을 수 있는 별미 김치는 아니지만 고들빼기김치를 담그고 익기를 기다리다 보면 배추 값도 좀 내리지 않을까. 고들빼기는 쓴맛을 빼내기 위해 오랫동안 삭히는 게 관건이다. 쪽파를 함께 넣고, 양념을 할 때 고춧가루는 따뜻한 물에 불리고, 멸치젓은 끓여 2~ 3회 고운 체에 밭쳐 사용한다. 찹쌀풀을 넉넉히 넣는다.

1 고들빼기는 뿌리가 긁고 잎이 연한 것으로 골라 시든 잎과 뿌리의 잔털을 떼 낸 다음 물에 흔들어 씻어 건져 놓는다.

2 고들빼기가 잠길 정도의 물에 소금을 심심하게 풀어 7~10일 간 담가 쓴맛을 빼내면서 삭힌다. 중간에 2~3번 물을 갈아주면 쓴맛을 완전히 뺄 수 있다.

3 넓은 그릇에 고들빼기와 김치 양념을 함께 버무린 후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는다.

생김치 먹듯이 바로 꺼내 먹을 수도 있지만 1주일쯤 지나 먹어야 제 맛이 난다. 김치 양념에 조청을 넣어 걸쭉한 양념을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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