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숲유치원 자연과 함께 아이들이 자란다, 쑥쑥 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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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대안 교육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숲유치원을 다녀왔다. 지난해 8월 문을 연 ‘인천대학교 숲유치원’과 올 5월 문을 연 ‘송파구구립 가락본동 어린이집 숲유치원반’에서 하루 수업을 함께 했다.

글=이정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무·꽃·곤충이 말을 건네요

인천 청량산 숲길. 이 곳이 바로 숲유치원의 교실이다. 우거진 숲에 통나무가 가로지르고, 개울이 흐른다.

오전 9시 인천 연수구 청량산 어귀에 5~6살짜리 꼬마 아이들이 모였다. ‘인천대학교 숲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다. 모두 자그마한 가방에 물통과 자리 깔개를 하나씩 찼고, 밝은 색 어린이용 등산복을 입었다. 등산복은 학부모회에서 공동 구매한 것이다. 하지만 모양과 색깔이 모두 달랐다. 22명의 어린이들은 교사와 함께 산을 올랐다. 첫 모임 장소인 산 중턱까지 가는 길, 아이들은 낙엽을 줍고 꽃을 들여다보는 데 여념이 없었다. 매일 올라가는 길인데도 중턱까지 가는 데만 30분이 걸렸다. 성인 걸음으로 3분이면 닿는 거리다. 끄트머리가 벌어졌고 옹이 구멍이 뚫린 통나무를 보고 “악어가 나타났다”며 깔깔댔고, 나무 생채기에서 새어 나온 송진을 만져 보며 “으악, 찐득찐득하다”며 소리질렀다. 김은숙 유치원장은 “이 연령대의 아이들은 책이 아니라 체험을 통해 배운다”며 “자연물들을 보고 듣고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란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숲의 여기저기를 뛰어다니고, 펄쩍펄쩍 뛰다가 자빠졌다. 하지만 이내 털고 일어서 또 내달렸다. 김 원장은 “아이들이 크게 다치는 곳은 무거운 물건과 뾰족한 모서리가 많고 바닥이 딱딱한 실내인 경우가 많다”며 “아이들도 밖에서는 스스로 조심할 줄 알아 크게 다친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단 아이들이 흙 바닥에서 구르는 등 옷이 많이 더러워지는 건 각오해야 한다. 이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옷이 깨끗한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일과를 결정하죠

위쪽부터 아이들이 나무, 돌로 연주하는 ‘숲음악회’의 초대장을 만들었다. 굵은 가지에 매단 그네를 타며 신난 아이들.

숲유치원은 정해진 커리큘럼이 없다. 그때그때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한다. 가고 싶은 곳도 아이들이 결정한다. 이날의 수업 장소는 ‘모험의 숲’이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나무가 우거진 데로 들어가는 곳이라 아이들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숲유치원에서 교사는 지도자가 아니라 보조자다. 가르치기보다 도와주고, 필요할 때 지원하는 역할이다. 노래를 가르치고, 동화를 읽어주고, 하루 한 시간쯤 ‘장난감 만들기’ ‘소리 알아맞히기’ 등의 교육을 진행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논다. 그 시간에 교사는 조심해야 할 것을 알리고, 싸움이 일어나면 말리는 게 일이다. 인천대학교 이명환(유아교육과) 교수는 “아이들에게는 놀이가 학습”이라며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회성을 배우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가운데 집중력을 키운다”고 말했다.

자유놀이 시간, 아이들은 친구들과 함께 꽃삽으로 땅을 파고 탄탄하게 다져 굴다리를 만들고, 종이컵에 돌을 채워 넣고 나뭇잎으로 뚜껑을 씌워 악기를 만들었다. 한 시간이 넘게 놀이에 열중하는 아이들도 여럿이었다. 한편에선 술래잡기를 하기도 하고, 나무에 매단 그네를 타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락본동 어린이집 윤영란 원장은 “한 시간 동안 톱과 삽으로 나무를 깎아 매끈하게 만드는 데 아이들은 지루해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는 게 가장 큰 행복이죠

나무 그루터기와 나뭇가지만 있으면 멋진 드럼이 만들어진다.

숲유치원에 오는 아이들은 특별한 아이들이 아니다. 처음에는 과잉행동장애를 가지거나 일반 유치원·어린이집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왔다고 한다. 김 원장은 “지난해 처음 신청을 받았을 때는 이곳이 대안학교 같은 역할을 했다”며 “지금은 보통 아이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현재 인천대학교 숲유치원과 가락본동어린이집 숲유치원반의 대기자 수만 60여 명. 학부모들은 크게 간섭받지 않고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을 원하고 있었다. 학부모 심은미(41)씨는 “첫째를 키울 때는 영어 유치원도 보내고 이것저것 시켰다”며 “하지만 아이들은 실컷 뛰어 놀며 행복을 누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해 둘째는 숲유치원에 보냈다”고 말했다. 학부모 우은영(35)씨는 “고가의 놀이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데 놀이가 아니라 교사 주도적인 학습이었다”며 “숲유치원은 애들이 몰입해서 놀 수 있어 아이가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숲유치원 어디 있나

인천대학교 숲유치원

인천 연수구 청량산. 인천대학교 숲유아교육연구소 운영.
월 25만원. 032-835-4255.

가락본동어린이집 숲유치원

서울 송파구 오금공원. 최초 구립 숲유치원.
월 17만1000~19만2000원. 02-403-0405.

아이다움 숲킨더가르텐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실내 교육 병행.
월 37만~40만원. 031-521-5152.

숲자연체험놀이학교

서울 서초구 원지동. 영어 원어민이 교육에 참여.
월 40만원. 02-3462-8077.


TIP 잠깐 맛보는 ‘숲유치원’ 산림청에 신청하세요

산림청에서도 전국의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숲유치원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고 싶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지역 산림청이나 산하 국유림관리소에 이용 신청을 하면 된다. 일주일~한 달에 한 번 정도 국유림 등에서 숲해설가가 주도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단, 숲해설가는 유아교육 전공자가 아니고 내용도 숲 계절 변화, 곤충 설명 등 ‘생태교육’ 위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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