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구단이 외면한 ‘퇴물’ 600만 불의 사나이로 부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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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호 14면

30만 달러(약 3억5000만원)였던 연봉이 스무 배 이상 뛸 전망이다. 국내에서 버림받은 투수가 미국 메이저리그와 일본 빅마켓 구단으로부터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일본 야쿠르트에서 뛰고 있는 임창용(34) 얘기다.

일본 진출 투수 임창용의 ‘위대한 실패’

임창용은 올 시즌 53경기에 등판, 1승2패35세이브 평균자책점 1.46을 기록했다. 센트럴리그 구원 2위이지만 내용적으로는 최고 마무리라고 해도 손색없다. 이와세 히토키(36·주니치)가 42세이브를 올렸지만 리그 1위 구단에 속한 덕분에 세이브 기회가 많았을 뿐이다. 이와세의 평균자책점은 2.25로 임창용에게 뒤진다.
 
올겨울이면 자유계약선수
미국과 일본 구단들은 그를 가만히 놔둘 것 같지 않다. 매력적인 마무리투수를 얻기 위해 올여름부터 뜨거운 정보전이 펼쳐졌다. 12월 스토브리그에선 그를 둘러싸고 한바탕 머니게임이 펼쳐질 전망이다.

8월 3일 주니치와의 도쿄 홈경기. 이날 진구구장에는 20명이 넘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본부석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텍사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메츠, 미네소타, 시카고 컵스, 토론토 구단 등 메이저리그에서 파견한 이들이었다. 3-2로 앞선 9회 초 임창용이 마운드에 오르자 스카우트들은 말을 멈췄다. 그리고 스피드건과 자료집을 꺼내 들고 그에 대한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했다. 임창용은 올겨울 어느 팀과도 계약할 수 있는 FA(프리에이전트: 자유계약선수)가 된다.

임창용의 쇼케이스는 완벽했다. 삼진 2개를 포함해 삼자범퇴로 주니치 강타선을 깔끔하게 막아내며 세이브를 따냈다. 현재 일본에서 뛰고 있는 선수 중에서 임창용만큼 메이저리그 구단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는 선수는 없다. 미국 스카우트들은 지난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부터 그를 지켜보고 있다.

임창용

이 과정에서 그의 예상 몸값도 흘러나왔다. 메이저리그에서 셋업맨이나 마무리로 뛸 수 있는 만큼 연봉 500만~600만 달러(약 60억~72억원) 기준으로 2~3년 계약이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일본 구단도 바빠졌다. 최고의 인기와 자금력을 자랑하는 요미우리를 비롯해 한신과 주니치 등 명문 팀들이 임창용 쟁탈전에 뛰어들 태세다.

특히 요미우리는 임창용을 가장 탐낼 구단으로 꼽힌다. 지난 6일자 석간후지에는 부상과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마크 크룬(25세이브, 평균자책점 4.26)을 내보내고 임창용을 영입할 것이라는 추측 기사가 나왔다. 요미우리는 2006년 41홈런을 때린 이승엽과 이듬해부터 4년 총액 30억 엔(연평균 7억5000만 엔·약 105억원)에 계약했다. 임창용의 시장가치는 4년 전 이승엽에 비해 떨어질 것이 없다.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는다면 연봉 6억~7억 엔(약 84억~98억원) 규모의 계약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다.

주니치도 노쇠해가는 이와세 후임으로 임창용을 생각하고 있다. 한신은 후자카와 규지(28세이브, 평균자책점 2.01)가 미국 진출을 노리고 있어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이와세(연봉 4억3000만 엔·약 60억원)와 후지카와(4억 엔·약 56억원)는 올해 센트럴리그 투수 연봉 1, 2위 선수다. 일본은 마무리투수를 후하게 대접하고 있기 때문에 임창용이 시장에 나올 경우 연봉 5억 엔(약 70억원)에서부터 줄다리기가 시작될 전망이다.

미국·일본 어디로 가든 임창용의 연봉은 한화로 60억원을 쉽게 넘을 것이다. 그가 2008년 야쿠르트에 입단했을 때 연봉은 30만 달러였다. 약체 팀에서 뛰면서도 2년간 61세이브를 거뒀지만 3년 계약에 묶여 2009년 연봉 50만 달러(약 6억원), 올해 160만 달러(약 22억원)에 그쳤다. 11월 말 계약이 끝나면 그의 가치가 제대로 반영될 것이다.
 
신무기 개발로 일본 현미경 야구 압도
임창용이 삼성에서 뛰었던 2007년 겨울 선동열 삼성 감독은 그를 트레이드 시장에 내놨다. 2005년 말 오른쪽 팔꿈치 수술을 받은 임창용이 재기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른 국내 구단들은 임창용을 데려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의 커리어는 탐났지만 미래가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트레이드가 지지부진한 틈을 타 임창용은 일본 야쿠르트와 계약했다. 삼성에서 받았던 연봉 5억원보다 적은 돈을 받고도 미련 없이 떠났다.

임창용은 2005년 삼성과 재계약할 때 ‘해외 진출을 원하면 허락하겠다’는 조항을 넣었다. 삼성 구단은 임창용의 전성기가 2004년(36세이브, 평균자책점 2.01) 끝난 것으로 판단했다. 사인할 때만 해도 실현 가능성이 0에 가까운 항목이었다.

실제 임창용은 추락했다. 2005년 선발로 복귀했지만 팔꿈치가 아픈 탓에 구속이 떨어졌다. 150㎞를 쉽게 넘던 구속이 140㎞ 초·중반으로 떨어지며 3년간 11승15패에 그쳤다.

지금까지 한국 선수들은 최전성기에 일본에 진출했어도 대부분 실패했다. ‘국보투수’ 선동열(1995년 주니치), ‘국민타자’ 이승엽(2004년 지바 롯데)도 첫해엔 거의 2군에 머물렀다. 그러나 국내에서 퇴물로 취급받던 임창용이 일본에서 성공했다. 2008년 개막전부터 최고 구속 156㎞ 강속구를 토해내며 33세이브(평균자책점 3.00)를 따냈다. 2009년엔 28세이브(2.05)를 올렸다. 지난해엔 최고 스피드 160㎞를 찍어 일본 역대 2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임창용은 3년간 강력하면서도 안정된 피칭을 했다. 상대를 해부하다시피 분석하는 일본 야구도 그를 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 타자들의 연구보다 임창용의 발전이 더 빨랐다.

2008년 임창용의 무기는 빠른 공이었다. 팔꿈치 부상 재발을 걱정하지 않고 힘차게 공을 뿌렸다. 아프기 전 같은 강속구가 살아났다.

2009년엔 포크볼을 선보였다. 그해 3월 WBC 결승전에서 일본 대표팀 스즈키 이치로(시애틀)를 향해 던지다 결승타를 얻어맞았던 그 공이다. 그러나 임창용은 두려워하지 않고 포크볼 구사 비중을 높였다. 직구를 기다리던 타자들의 방망이가 헛돌았다.

올해에는 더 진화했다. 공의 스피드보다는 회전력을 높이는 고급 피칭을 하고 있다. 구속이 다소 줄어든 대신 투구가 포수 미트에 박힐 때까지 살아 들어왔다. 리그 최고의 강속구에 날카로운 변화구를 보강했고, 공의 움직임까지 좋아진 임창용은 완벽한 마무리투수에 가까워졌다. 밑바닥까지 추락한 임창용은 다시 뛰어올랐다. 30대 임창용의 가치는 20대 임창용의 가치보다 열 배 이상 높아졌다.

임창용의 성공은 실패로부터 비롯됐다. 하루의 실패도 1년의 패배도 모두 그랬다. 그는 “실패는 마무리투수의 숙명이다. 모든 경기를 다 이길 수는 없다.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패배 인정해야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
‘실패 망각증’이 성공을 부른다는 의미다. 실패 자체를 잊기보다는 실패 후유증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젊은 시절 임창용은 강속구로 성공했지만 강속구를 잃고 무너졌다. 수술 후 두려움을 떨쳐내고 다시 전력으로 던졌다. 포크볼을 던져 뼈아픈 안타를 맞았지만, 용기를 잃지 않았다.

해태 시절 임창용은 실패를 몰랐다. 21세이던 1997년 주전 마무리로 도약해 26세이브(구원 2위)를 올렸다. 98년에는 8승7패34세이브로 구원왕(42세이브포인트)에 올랐으며 평균자책점 1.89였다. 가운데 직구만 던져도 타자들은 당해내지 못했다. 99년 삼성으로 이적해서는 마무리이면서 평균자책점 1위(2.14)를 차지했다.

선발로도 역시 최강이었다. 선발 첫해인 2001년 14승(다승 공동 3위) 6패 평균자책점 3.90, 2002년 17승(3위) 6패 평균자책점 3.08, 2003년 13승(공동 3위) 3패 평균자책점 3.55를 기록했다. 2004년 다시 마무리로 복귀하자마자 구원왕(36세이브)을 따냈다.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임창용처럼 성공한 투수는 해태 시절 선동열 외에는 없었다.

결정타를 맞더라도 툭 털어버리는 담담함 혹은 뻔뻔함으로 실패를 견뎌냈다. 뒤돌아보면 걸음이 느려지기 때문에 앞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왔다.

임창용은 조만간 귀국할 예정이다. 그는 “조용히 지낼 테니 찾지 마라”며 나지막하게 웃었다. 성공했다고 어깨에 힘을 줄 생각 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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