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신혼 때 기억 되살리며 대화 시간 늘려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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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호 18면

자연에 4계절이 있듯 우리 몸에도 봄·여름·가을·겨울이 있다. 흔히 40~50대 중년을 사추기(思秋期)라고 부른다. 인생의 봄에 해당하는 청소년기에 찾아오는 사춘기에 빗댄 이야기다. 이때가 되면 남자든 여자든 체내 성호르몬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정신적·육체적인 변화가 찾아온다. 여성은 ‘여성다움’을 잃고 남성은 ‘남성다움’을 잃는 것이다. 이런 변화를 극복하지 못하면 부부 사이에 금이 가기도 한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갱년기, 부부가 함께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소심한 남편, 대범한 아내로 변해
남성의 갱년기는 주로 고환에서 만들어지는 테스토스테론이란 남성호르몬이 줄어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호르몬은 20대에 최고점을 그리다 30대에 들어서면 매년 1년에 1%씩 줄어든다. 보통 남성호르몬 수치가 2.6ng/mL 이하로 떨어지면 갱년기라고 진단한다. 삼성서울병원 비뇨기과 이성원 교수는 “우리나라는 40대 이상 남성의 15~20%, 미국은 50대의 10%, 60대의 20% 정도가 남성갱년기로 진단된다”고 말했다.

남성이 갱년기에 접어들면 감정적으로 큰 변화가 생긴다. 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비뇨기과 이형래 교수는 “남성호르몬이 줄어든 중년 남성은 감성적으로 변한다. 성격이 소심해지고 잔소리가 많아지는가 하면 눈물도 많아진다. 아내에게 의존하는 성향도 커진다”고 말했다. 성욕이 감소하고 발기부전이 잦아지며 정액량도 준다. 사정 후 다음 발기까지의 시간이 길어진다. 몸도 변한다. 여성호르몬 수치가 상대적으로 높아져 가슴이 여성처럼 볼록해지고, 수염도 줄어든다. 근육 생성이 잘 되지 않아 뼈마디가 쑤시고 약해진 느낌이 든다. 아랫배(올챙이배)도 볼록 나오게 된다.

여성은 50세 초반에 폐경이 시작되면서 갑작스럽게 갱년기가 찾아온다. 폐경은 생리가 6개월 이상 없는 상태를 말한다. 평소 40~400pg/mL 정도(생리 주기에 따라 달라짐) 유지되던 여성호르몬은 폐경 시 10pg/mL까지 급격히 떨어진다. 여성 호르몬이 줄면 성격이 대담해지고 보다 사회적으로 변한다. 계 모임이나 동창회 모임 등의 네트워크를 만들면서 활동영역을 넓힌다. 주량도 는다. 신체적으로도 남성처럼 턱수염이 나기도 하고 탈모가 진행되기도 한다. 피부를 곱게 만드는 여성 호르몬이 줄어 피부가 거칠어지고 얼굴이 빨개졌다 식었다 하는 안면홍조증도 생긴다. 성생활에도 빨간불이 켜진다. 질이 건조해져 성교통이 생기고, 요로감염의 위험도 높아진다.

남녀 갱년기 증상을 예방, 또는 줄이려면 부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상대편의 변화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부부 갈등이 심해진다. 한양대병원 산부인과 박문일 교수는 “갱년기 때는 정신적·신체적으로 예민해져 있는 상태다. 똑같은 갱년기를 겪어도 배우자가 얼마만큼 증상을 잘 알고 도우려고 애쓰느냐에 따라 갱년기 극복 속도와 정도가 다르다.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부는 갱년기를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도 한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부간의 대화다. 어떤 증상이 있는지, 어떻게 아픈지 등을 물어보고 서로의 아픔을 공유해야 한다. 박문일 교수는 “병원을 찾아오는 여성들 얘기를 들어보면 남편이 부인의 심리적·신체적 변화에 대해 전혀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작정하고 얘기를 해야 안다”고 말했다. 이성원 교수도 “여성의 갱년기는 그래도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남성의 갱년기는 이제 연구된 지 10년도 채 안 됐다. 여성들도 남성 갱년기에 대해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 아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서먹해진 사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결혼 전이나 신혼 때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도 좋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유범희 교수는 “일주일에 한 번 둘만의 시간을 가지며 신혼여행지에서의 즐거움, 신혼 전셋집에서의 행복함 등을 떠올리며 얘기하는 시간을 만들면 생각보다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취미생활을 함께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성적인 배려도 필요하다. 갱년기가 되면 여성의 질은 극도로 건조해진다. 박문일 교수는 “부인에게 질 건조증을 완화해주는 에스트로겐 젤이나 크림 등을 바르도록 배려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편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다. 갱년기 때 남성은 사정과 다음 사정 사이의 시간이 길고, 발기력도 떨어진다. 이성원 교수는 “물론 남성호르몬 수치가 떨어진 탓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인 요인”이라며 “남성이 자신감을 갖고 관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격려해주는 말 한마디가 경우에 따라 약만큼의 효과를 갖기도 한다”고 말했다.

신체 변화에 맞춰 성적인 배려도 필수
운동이나 식단,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도 병행해야 한다. 남성에게는 테스토스테론, 여성에게는 에스트로겐 수치를 높이는 음식 위주로 식단을 꾸린다. 콩·두부·달걀·흰색 살코기 등의 단백질 음식, 색이 짙은 과일(껍질 위주), 신선한 야채, 등푸른 생선 등에는 남녀 성호르몬 생성을 증가시키는 물질이 공통으로 들어 있어 부부가 별도의 식단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최근 들어 음주·흡연·스트레스·비만·운동부족이 남성호르몬 분비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음주나 흡연은 가급적 삼가고 운동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운동은 체지방을 줄이고 하체 근육량을 키워 성호르몬 분비를 촉진한다. 일주일에 3~5번, 하루 30~50분 정도 빨리 걷는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너무 강한 운동은 활성산소만 생성시킬 수 있다. 40~50대가 지나면 하체 근육량이 줄어든다. 자전거타기, 등산 등 하체를 발달시키는 운동을 일주일에 한 번씩 함께 하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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