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 속 그 이야기 <7> 부산 문탠도로·해파랑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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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는 일출도 좋고 월출은 더 좋다. 한데 일몰도 좋다는 건 이제야 알았다. 달맞이고개 어귀 미포항에서 해 떨어지는 해운대 해수욕장을 바라봤다.

부산 해운대에도 사람을 위한 길이 생겼다. 올여름 해운대구청이 달맞이고개 중턱에 문탠도로라는 오붓한 산책로를 내더니, 지난달엔 오륙도부터 송정해수욕장까지 해안선을 따라 또 길이 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낸 해파랑길 부산 1구간이다. 그 해파랑길 부산 1구간 안에 문탠도로도 들어 있다. 문탠도로든, 해파랑길이든 아직은 입에 착 감기지 않는다. 하나 이 낯선 이름으로 불리기 전부터 해운대 바닷길은 이미 훌륭한 트레일이었다. 동백섬에서부터 해운대 해수욕장을 따라 달맞이고개 어귀까지 이어지는 해안선은 마라톤 동호회의 훈련 코스로 애용돼 왔으며, 달맞이고개는 해운대 주민 40여만 명에게 친숙한 산책로였다. 이 오랜 전통의 길에 비로소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해운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해수욕장이다. 그 해수욕장을 끼고 도는 트레일도 한국 최고를 꿈꾼다. 이번 달엔 해운대를 걸었다. 바닷길을 걷는 건 늘 상쾌한 일이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 문탠도로

해파랑길이 열렸다. 해운대 해수욕장 입구에서.

해운대해수욕장에서 송정해수욕장까지 야트막한 고개가 있다. 달맞이고개. 고개 위에서 바라보는 월출이 하도 고와 붙은 이름이다. 달맞이고개는 서울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명소다. 드라이브 코스로도 유명하고, 고개 위에 형성된 카페촌은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이고 갤러리도 여러 개 있어 서울 청담동 못지않은 화려한 야경을 자랑한다.

이 고개 중턱에 해운대 주민이 애용하는 산책로가 있었다. 솔숲 사이를 가로지르는 오솔길이었다. 이 오솔길을 올봄 해운대구청이 정비해 ‘문탠(Moon-tan) 도로’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이 재미있다. 선탠은 알겠는데 문탠이라니. 워낙 월출이 유명한 곳이다 보니 달빛 받으며 걸으라는 뜻에서 ‘문탠’이란 단어를 떠올린 듯하다. 답사에 동행한 해운대구청 문병국 관광문화계장은 “달빛이 인간의 정신과 면역력에 도움을 준다는 해외 연구 사례를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문탠도로 탐방로. 은은한 조명이 제법 분위기를 돋운다.

길이는 2.2㎞에 불과하다. 달맞이고개 입구에서 고개마루 해월정까지다. 하지만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길 모퉁이마다 아기자기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고, 해운대에 얽힌 역사와 전설도 소개해 놓았다. 저녁엔 은은한 조명이 들어와 어둠이 내린 오솔길을 밝힌다. 해월정 위에서 내려다보는 해운대 야경은 언제 봐도 좋다.

# 해파랑길

해월정 야경.

지난달 15일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내 최장거리 동해안 탐방로 ‘해파랑길’을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2014년까지 부산 오륙도 앞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688㎞를 트레일로 잇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해파랑길에는 관동대로나 블루로드처럼 이미 트레일 코스로 조성된 구간도 있고, 앞으로 정비해야 할 구간도 있다. 해운대 문탠도로도 해파랑길과 포개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홍성운 사무관은 “정부가 조성한 탐방로의 종합판”이라며 “더 이상의 해안 트레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해파랑길의 시작점이 부산 오륙도 공원이다. 오륙도 공원에서 해안길을 따라 광안리 해수욕장∼동백섬∼해운대 해수욕장∼달맞이고개 해월정까지가 부산 1구간이다. 특히 부산 1구간은 해파랑길 688㎞ 중에서 ‘베스트 5’로 선정된 곳이다. 부산 1구간의 총 길이는 20.44㎞. 문화체육관광부는 소요 시간을 6시간 30분으로 예상했지만, 이리저리 구경하며 걷다 보면 해종일 걸어도 빡빡하다. 해월정을 지나면 송정 해수욕장 방향으로 부산 2구간이 이어진다.

# 추천 코스

문탠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문탠로드는 너무 짧고 해파랑길은 너무 길다. 하여 해운대 바닷길 추천 코스를 짰다. 동백섬에서 시작해 문탠도로까지 이어지는 약 8㎞ 구간이다. 우선 동백섬으로 간다. 섬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나오면 1㎞다. 백사장을 따라 해운대 해수욕장을 지나 미포항까지 걸으면 3㎞쯤 되고, 미포항에서 달맞이고개를 올라 문탠도로까지 걸으면 다시 4㎞가 더해진다.

동백섬 등대.

중간에 들를 곳이 몇 군데 있다. 들를 곳을 다 둘러보면 해운대 바닷길 추천 코스는 8㎞를 훨씬 웃돈다. 우선 동백섬. 동백섬은 작다. 한 바퀴 돌아 나와도 1㎞ 거리에 불과하다. 하지만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1시간도 부족하다. 동백섬 남쪽 입구에 2005년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를 개최했던 누리마루 건물이 있고, 동백섬 전망대에 가면 최치원(857∼?)이 바위에 새겼다고 전해지는 ‘海雲臺(해운대)’란 글자가 있다. 해운대라는 지명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한다. 탐방로를 벗어나 동백섬 언덕을 오르면 최치원 동상도 볼 수 있다.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해운대역 방향으로 5분쯤 걸어 들어가면, 좁은 골목 양 옆에 끼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슬레이트 건물 10여 채가 나온다. 주소는 우1동 598번지, 마을 이름은 솔밭마을이다. 언뜻 보면 전형적인 무허가 빈민촌의 모습인데, 가만히 지켜보니 소나무가 지붕을 뚫고 나와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해운대역에 근무하던 철도 노동자들이 해송 숲 사이에 천막을 짓고 살던 것이 오늘 이 모습이 된 것이라고 한다. 솔밭마을 주민 30여 명은 대부분 독거노인이며, 솔밭마을 대부분은 철거 예정지다. 해운대 번화가 복판에 비집고 들어앉은, 섬 같은 풍경이다

미포항에서 달맞이고개를 오르는 길도 시간을 제법 잡아먹는다. 달맞이고개가 자랑하는 몽마르뜨 거리를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 좁은 공간에 갤러리 18곳이 밀집해 있어, 다 둘러보려면 한나절도 부족하다. 몽마르뜨 거리 안에 추리문학관도 있다. 한국 추리문학의 대가 김성종(69) 선생이 지은 국내 유일의 추리문학관이다. 입장료 5000원을 내면 커피 한 잔과 함께 소장도서 4만7000여 권 중에서 아무 책이나 골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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