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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군의 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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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6·25전쟁이 벌어진 한반도는 미군 장군들과 그 아들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전장(戰場)이기도 했다. 장군의 아들만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주한 미8군 사령관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의 아들 짐 밴 플리트 공군 중위도 그중 한 명이다. 아버지를 따라 참전한 짐 중위는 1952년 4월 4일 야간 폭격 임무 수행 중 실종됐다.

“저는 지원해서 전투비행훈련을 받았습니다. B-26 폭격기를 조종할 것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사람이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한국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저도 아버지에게 힘을 보탤 시기가 다가온 것 같습니다.” 짐 중위가 어머니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의 일부다. 아버지 밴 플리트 장군은 아들을 잃고도 참군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적지(敵地)에서의 아들 구출작전을 무모하다는 이유로 중지시키고, 흐트러짐 없이 지휘관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했다.

밴 플리트 장군의 전임 미8군 사령관인 월턴 워커 장군의 아들 샘 워커 육군 대위도 중대장으로 한국전에 참전했다. 워커 장군이 50년 12월 의정부 부근에서 순직하자 아들 샘 대위는 일본 도쿄에 있던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 장군에게 불려간다. 아버지의 유해를 모시고 미국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샘 대위는 전선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했다. 부하들이 목숨을 걸고 악전고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장이 바뀌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군인정신의 모범이라 할 만하다.

우리에게도 이런 전통이 없는 건 아니다. 660년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의 장군들과 그 아들들이 보여준 모습이 대표적이다. 백제 계백 장군과의 최후의 일전에서 신라군이 수세에 몰리자 김흠춘 장군의 아들 반굴과 품일 장군의 아들 관창이 단신으로 적진에 달려들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다. 아들을 사지(死地)로 보내면서 두 장군이 앞세운 건 ‘충성과 효도’ ‘군인의 모범’이었다.

그제 국방위 국감에서 장성(將星)의 자제들이 편한 부대와 보직에 배치받는다는 이른바 ‘장군의 아들’ 논란이 제기됐다. 근무가 고된 전투병으로 근무하는 비율은 극히 낮은 반면 인기 좋은 해외파병 비율은 높다는 것이다. ‘장관의 딸’ 특채 파문 뒤끝인지라 새삼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선 곤란하다. 이 땅에서 피 흘렸던 미군 장군의 아들들과 반굴·관창에게 부끄럽지 않은 ‘장군의 아들’을 기대하는 건 시대착오적 욕심일까.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