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국, 북핵 용인에 정책 옵션 없다

중앙일보

입력

핵무기 보유와 6자회담 참가 무기중단을 선언한 북한의 진의에 대해 관련 국가들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북한이 협상력을 제고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고려도 있었겠으나 북한에는 보다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고 본다. 핵 보유국가로서의 위치를 기정사실화하고 국제사회에서 인지받으려는 의도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상황이 온다면 북한은 대외관계에 있어 정치.경제.군사적 측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북한은 핵 보유국가로서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군비통제 차원의 회담에 임할 수 있다.

문제의 성명은 북한이 핵무장에 대한 결의를 표명한 것이라고 본다.

*** 북핵 선언은 핵무장 결의 표명

지난해 2월 미 정부는 북한의 국방정책에 있어 핵무장이 중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견해를 발표한 바 있다. 미 정부 내외의 전문가들 간에는 북한이 어떤 반대급부를 받고도 쉽사리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폐기'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북한은 오로지 핵 보유만이 그들의 체제 및 지도자의 안전을 확실히 보장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며 한반도의 비핵화, 6자회담 과정 유지, 핵 확산 저지라는 3개 원칙을 반기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확인했다.

북한은 미국과 다른 관련국들의 그러한 신중한 반응을 국제사회의 의지가 약하다고 판단, 자신들의 강경노선에 정당성을 부여할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관련국들 간의 갈등이 확대돼 미국이 북한에 양보를 하게끔 한국.중국.러시아가 미국을 압박해 줄 것을 기대할 것이다. 북한은 만약 국제사회가 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고 강경한 방향으로 선회해 자신들이 받을 불이익이 크다고 본다면 적절한 명분을 걸고 6자회담에 나올 수 있게끔 성명에 퇴로도 마련해 놨다.

이번 북한 성명으로 인해 미 정부 내외 '협상파'의 입장은 크게 타격을 받게 됐다. 미국으로 하여금 강경정책을 채택하도록 촉진하는 결과가 됐다. 이는 6자회담이 3월께 재개될 것이란 상정하에 북한에 제시할 유연한 입장을 마련하고 있던 미국으로 하여금 그런 유연한 입장을 계속 추진하는 데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됐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이뤄진다고 해도 핵 문제 해결을 기대하기는 곤란하다. 결국 회담은 무기 휴회, 실질적으론 결렬상태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미국으로선 유엔 안보리에서의 토의 및 제재 결의 등 대북 압박을 단계적으로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 북한의 행동에 따라선 궁극적으로 정권 교체를 위한 강압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북한의 핵 보유 용인이란 정책옵션은 결코 없다.

*** 외교협상 통해 해법 찾아야

이러한 시나리오는 북.미 양국은 물론 주변 국가들에도 커다란 손실을 가져온다. 외교협상을 통한 해법 찾기에 전력을 다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사실 핵 문제에 관한 북.미 양국의 입장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양측의 핵심적 이익을 보호하며 양측이 수락할 수 있을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과 미국 정부 요인들과의 오랜 대화에 입각해 볼 때 일괄타결이 아직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 시점에서도 양측에 핵 문제를 정치적으로 타결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일단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 뒤 6자회담의 테두리라는 명분하에 북.미 양자가 장소와 시기에 구속받지 않고 격상된 대표 간의 협의를 거쳐 조속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개입하게끔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적절한 시점에서 부시 행정부의 신임을 받은 미국 인사가 직접 김 위원장에게 미국의 구상을 제시하고 결단을 촉구해야 한다. 나는 김 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다만 김 위원장의 최종 선택이 미국의 국익에 배치된다고 판명되면 강압적 조치 실천으로 이행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김영진 미 조지워싱턴대 명예교수, 현 일본 게이오대 초빙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