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수사기록 법정에 제출 않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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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검찰이 검찰조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판례와 법원의 공판중심주의에 대한 대응으로 재판부에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이에 따라 사법사상 처음으로 수사기록 없이 공판이 진행될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16일 서울 강동시영아파트 재개발과 관련해 조합장에게 1억4000여만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철거업체 대표 상모씨 등 2명의 첫 재판에서 "법정에 검찰 수사기록과 증거를 제출하지 않고 법정에서 피고인과 증인에 대한 신문 등을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형사재판은 검찰이 공소장과 함께 피의자 진술조서 등 각종 수사기록을 법원에 제출해 재판부 및 변호인과 기록을 공유한 상태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법원은 최근 수사기록을 확인하는 과정이 중심이던 종전 재판 방식을 바꿔 활발한 법정 공방을 통해 유.무죄를 가리는 공판중심주의에 따른 재판을 적극 추진 중이다.

남기춘 특수2부 부장검사는 "최근 대법원 판결에 따라 검찰 조서를 당사자가 부인하면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된 만큼 굳이 첫 재판부터 수사기록을 낼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검찰 상부와 협의한 것은 아니며 개인적인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와 변호인 측은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변호인들은 "피고인의 방어를 위해서는 수사기록을 봐야 한다"면서 재판부에 수사기록 제출을 명령해 달라는 신청을 했다.

담당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최완주 부장판사는 "검토는 해보겠지만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책임은 검찰 측에 있기 때문에 기록 제출 여부는 원칙적으로 검찰의 재량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편 검찰의 이 같은 대응은 수사과정에서 법원이 핵심 인물에 대한 구속영장을 잇따라 기각한 데 대한 반발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검찰은 이날 재판에서 "법원이 뇌물을 받은 사람의 구속영장은 기각하고 뇌물을 준 사람만 구속시켜 수사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상씨에게서 뇌물을 받은 재개발 조합장 김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상씨 진술의 신빙성 부족 등을 이유로 세차례 기각한 바 있다. 김씨는 이에 따라 불구속 기소됐다.

그러나 남 부장검사는 "피고인들이 혐의사실을 강력히 부인해 내린 결정이며 구속영장 기각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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