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분비 부족한 아시아인, 인스턴트 음식 즐기면서 내장비만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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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서울 상공회의소에서 서울특별시 주최로 ‘대사증후군 국제포럼’이 열렸다. 이번 포럼에 참석한 일본당뇨병협회 다카시 가도와키 이사장(도쿄대의대 교수), WHO서태평양지역 체리안 바게스 박사(만성질환 담당), 서울시 대사증후군관리사업 윤석준 지원단장(고려대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을 초빙해 ‘대사증후군 관리의 중요성과 국가관리사업의 필요성’에 대한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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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준 교수=대사증후군을 방치해 생기는 암과 뇌·심혈관질환으로 인한 우리나라 사회경제적 손실이 연간 11조원에 이른다. 1인당 평균 손실액이 970만원이나 된다.

▶다카시 가도와키 교수=일본도 마찬가지다. 남성은 2명 중 1명, 여성은 5명 중 1명이 대사증후군을 앓고 있다. 경제성장이 짧은 기간 안에 이뤄진 탓이다. 전통음식과 소식 대신 고열량·저영양의 인스턴트 음식이 자리를 대체하면서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서양인의 몸은 변화에 대응할 시간이 있었지만 아시아인은 그렇지 못했다. 또 목축을 한 서양민족에 비해 아시아인은 농경민족이다. 유전적으로 고지혈증이나 당뇨 등 성인병에 취약하다. 아시아인의 인슐린 분비량은 서양인의 50~60% 수준이다. 이런 민족이 고열량·동물성 위주로 식사를 하면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져 대사증후군이 급격히 증가한다. 서양인은 피하지방이 주로 발달하는데 아시아인은 내장지방이 더 잘 발달한다.

-윤 교수=한국은 지난해부터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대국민 대사증후군관리 사업을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지자체 중 유일하게 보건 분야의 별도 예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 인식 개선이 쉽지만은 않다.

▶가도와키 교수=일본은 2002년부터 준비작업을 시작해 2008년 전 국민 대사증후군 검진을 의무화했다. 지난해 ‘올해의 유행어’ 대상으로 대사증후군인 사람을 뜻하는 ‘메타보’가 뽑혔다. ‘메타보’라는 용어가 많이 회자되도록 하는 전략을 썼다. 매년 전 국민의 허리둘레를 재고, 기업·학교 등을 대상으로 허리둘레가 기준치 이상인 사람에게 벌금을 매긴다. 또 허리둘레를 기준치 이하로 잘 유지한 사람에겐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도 도입했다. 이를 못 지킨 사람이 ‘메타보’다. 자연스럽게 가족·직장동료·학생들 사이에서 메타보가 화제가 되고, 메타보가 되지 않으려는 행동 변화가 일어났다.

▶가체리안 바게스 박사=세계적으로 다양한 예방 사업이 시행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과당첨가음료에 1온스당 1페니의 세금을 부과한다. 특히 뉴욕주에선 식당에서 트랜스지방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다. 영국에서는 식품에 지방 함유량을 알아보기 쉽도록 신호등 모양으로 지방함유 정도를 눈에 띄게 표기하도록 했다. 스웨덴은 12세 이하 어린이를 겨냥한 고열량 식품 광고를 금지하며, 아일랜드는 과자류의 판촉 광고에 만화캐릭터나 유명인을 출연하지 못하도록 한다.

-윤 교수=한국인은 건강이 나쁜 것을 자신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바게스 박사=미국은 가난할수록 뚱뚱하고, 만성질환에 시달린다. 따라서 정부는 서민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저렴하게 사도록 도와주고, 식당이나 대량식품에는 화학첨가물을 적게 쓰도록 한다. 또 흡연과 알코올 섭취를 통제하며, 식품 선택에 영향을 주는 광고를 통제한다. 신체활동을 증진하는 산책로나 공원 비율을 늘리도록 의무화하기도 했다. 대사증후군이 늘어나는 것은 정부의 건강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국가는 대사증후군관리사업과 같은 방식으로 국민에게 질병 예방 프로그램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윤 교수=한국은 1~2년 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금방 예산이 삭감된다. 건강은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지만 성과물은 금방 눈에 보이지 않는다.

▶가도와키 교수=일본은 2002년에 시작해 2009년이 되어서야 국민적 관심과 결과물을 이끌어냈다. 국민이 좀 여유를 갖고 봐줘야 한다. 단, 다른 질병의 위험요인도 무시하고 지나가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바게스 박사=한국은 대사증후군을 지자체에서 관리하는 최초의 사례다. 5~10년 집중적으로 시행하고, 계몽하면 큰 효과를 거둘 것이다. 현재 수 십조에 이르는 사회경제적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윤 교수=대사증후군 전문상담가의 역량을 높이고, 평가시스템을 더욱 확충하며, 국민 참여도를 높여야 한다. 올해 안에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양해각서를 체결해 건강검진을 받은 환자들이 자동적으로 서울시 대사증후군 관리프로그램에 등록하는 연계 사업도 실시할 것이다. 서울시에서 성공적인 결과물이 나오면 사업이 전국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리=배지영 기자,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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