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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이래서 퍼진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86호 18면

얼마 전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만나다』란 제목의 책을 출간하면서 개인적으로 난처한 일을 겪었다. 책 내용은 한국의 전통 민담을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참 고맙게도 여러 언론매체에서 괜찮은 신간 서적으로 소개했다. 저자로서 영광이긴 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뉴욕에서는 처음으로 정식 분석가 과정을 마쳤다”라는 인터뷰 내용이 ‘한국 최초’란 수식어로 바뀌어 나왔다. 스위스·한국 등지에서 분석심리학 수련 과정을 마친 다른 몇 분 선생님의 이력을 통째로 부정한 셈이 되었다. 졸지에 경력을 부풀린 거짓말쟁이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던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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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자의 경우는 그리 심각한 사안은 아니다. 목숨을 건 듯한 진실공방과 명예훼손 관련 소식들이 잠잠할 만하면 매스 미디어를 통해 터지고 있으니 말이다. 유언비어와는 또 다르게 지면이나 모니터를 통해 접하는 기사들은 공신력이 있기도 하지만 공신력이 있는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경향도 있다. 그런데 실상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경험을 한 번쯤 한 사람들은 활자화된 글의 진실성에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의심은 무언가 보도된 것과는 다른 뒷얘기가 있을 것이라는 음모론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의심이 더 깊어지면 엄연한 객관적 사실조차도 인정하지 않게 된다.

미국 로스웰(뉴멕시코주의 작은 마을) UFO 추락설 및 우주인 사진 유포사건, 케네디 암살사건에 CIA 관련설, 월남전과 한국전 배후의 유대인 무기상 시나리오 등은 널리 알려진 사례들이다. 요즘은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무슬림이고, 2012년에는 지구가 멸망한다는 설까지 나왔다.

심리상담을 할 때도 환자들이 말하는 내용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진실일 뿐이고, 객관적 진실이 아니라는 걸 곱씹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자칫 잘못하면 환자 주변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이 단박에 천하에 몹쓸 흉악한 사람으로 매도될 수 있어서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羅生門)은 사람들의 언술이 과연 어디까지 진실이고 거짓인지를 잘 형상화한 작품이다. 강간 살인 사건을 세 개의 다른 관점으로 묘사한다. 심리 상담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참고로 삼을 만한 명화다.

원래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같은 일이라도 서로 다르게 표현해 이런저런 갈등이 생긴다. 만약 우리 모두가 자신이 듣고 보고 경험한 일이 절대적인 진실이 아닐 수 있고, 또 내가 말하고 전하는 것 역시 그런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훨씬 더 진실하고 신중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을까.

거의 모든 불경은 ‘이렇게 나는 들었다’는 뜻의 ‘여시아문(如是我聞)’이란 말로 시작된다. 이 경전에 기록된 활자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경전의 저자가 부처님의 말씀을 들은 대로 적은 것임을 강조한다. 성경의 무오류성을 이야기하는 근본주의자들도 있지만, 성경에도 앞뒤가 서로 다른 부분들이 적지 않다고 성경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성경이 한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이나 불경이 이러할진대, 인터넷에서 마구 퍼나르는 글들이야 오죽할까. 확인할 길 없는 그릇된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해결책은 나와 상관없는 남의 일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쏟지 않고 각자의 인생을 충실하게 사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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