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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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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한국전쟁’(1951년 수상).

“철교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피란민을 보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선 사람들인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진 찍는 일 뿐이었다. 어찌나 추운지 군용장갑을 꼈는데도 손가락이 얼어 셔터를 누르기 힘들었다.”

종군기자로 한국 전쟁을 취재했던 맥스 데스포(97) 기자의 회고다. 그는 1950년 12월 폭파된 대동강 철교에서 피란민의 행렬을 찍었다. 끊어지고 휘어진 철교에 개미처럼 붙어 강을 건너는 장면이다. 당시 AP통신 기자였던 그는 평양에서 찍은 이 사진으로 1951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퓰리처상 수상작을 모은 사진전이 대구에서 열린다. ‘순간의 역사, 역사의 순간-퓰리처상 사진전’이란 이름의 이 전시회에는 보도 사진 145점이 전시된다. 1942년부터 2010년까지 수상작을 한자리에 모았다. 1일부터 12월 5일까지(월요일 휴관) 국립대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감상할 수 있다. 국립대구박물관·대구MBC·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한다. 지난 6월 서울에서 개막해 두 달여 동안 20여만 명이 관람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출품작 중에는 눈에 익은 사진도 많다. 대표적인 것은 ‘전쟁의 테러’다. 네이팜탄(3000도의 화염을 내는 폭탄) 공격으로 화상을 입은 벌거벗은 소녀가 공포에 질려 울부짖으며 도망치는 장면이다. 1972년 AP통신 사진기자였던 닉

‘신념과 신뢰’(1958년 수상).

우트는 이 사진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세계에 고발했으며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사진 속의 주인공인 킴 푹(당시 9세)은 캐나다로 망명했다. 이후 반전활동을 해왔으며 1997년 UN 평화대사로 임명됐다. 그는 미국 시카고와 캐나다 토론토에 재단을 만들어 전쟁 피해 어린이를 돕고 있다. ‘베트콩 사형집행’도 마찬가지다. 베트남의 한 장군이 거리에서 베트콩 포로의 머리를 권총으로 쏘는 섬뜩한 장면이다. 이 작품은 많은 미국인을 반전주의자로 만들었다. 프리랜서 사진가인 스티브 루들럼의 ‘세계무역센터 공격’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거대한 화염에 휩싸인 세계무역센터 건물 모습이 당시의 충격을 그대로 전해 준다. 이 사진은 뉴욕타임스에 실렸고, 루들럼은 2002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전시 사진 옆에는 촬영 당시 상황과 역사적 배경, 사진을 찍은 기자의 소감 등이 상세하게 적혀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천보 사진전 기획팀장은 “전시 작품을 통해 현대사를 짚어 볼 수 있고,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겐 생생한 교육의 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053-760-8597.

홍권삼 기자

◆퓰리처상=저명한 언론인 조지프 퓰리처의 유산 50만 달러를 기금으로 1917년 제정됐다. 언론·문학·음악 등 3개 분야로 나누어 시상한다. 보도사진 부문은 1942년 시상을 시작해 68년 특종 사진과 특집 사진으로 시상 분야가 나누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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